설 연휴를 앞둔 지난 7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주유엔 한국대표부 황준국 대사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헤라르도 페날베르 포르탈 쿠바 대사였다. 그는 “내일 꼭 봅시다”라고 했다. 오랜 외교관 생활을 통해 직감적으로 ‘중요 사안’이라고 느낀 황 대사는 “좋다”고 했다. 8일 주유엔 한국대표부에서는 황 대사와 2명 등 총 3명이 참석했고, 쿠바에서는 대사 포함 2명이 나왔다. 총 5명이 마주 앉은 자리에서 포르탈 대사는 “쿠바와 한국이 수교를 하자”고 말했다. 1959년 양국 간 단절됐던 교류는 그렇게 이어졌다.
1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과 쿠바의 수교는 1주일 새 급박하게 이뤄졌다. 일단 양측은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이 내용이 새어 나가지 않게 최대한 빨리 수교를 맺기로 했다. 만약 이 정보가 알려지면 북한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양측은 외교 프로였기 때문에 “외부로 알려지면 수교를 안 한다”는 협박으로 들릴만한 대화는 없었다고 한다.
날짜를 조율하던 도중 쿠바 측에서 “14일은 어떠냐”고 말했다. 황 대사가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묻자 쿠바 대사는 “14일이 밸렌타인 데이니까 양국의 사랑과 우정을 상징한다는 의미가 되지 않겠느냐”며 웃으며 말했다. 한국 정부도 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에 동의했다.
유엔대표부는 한국에 있는 외교부에도 이 사실을 즉각 알렸다. 외교부 내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만 이 정보를 공유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자세히 보고됐다. 이후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아무리 쿠바와의 수교를 준비해왔다고 해도 시간을 정해놓고 일을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게다가 설 연휴도 눈앞에 있었다. “국가 중대사다. 반납이 당연하다.” 황 대사는 극소수의 대표부 인력과 함께 뉴욕 센트럴파크 인근 대사 관저를 주로 이용해가며 수교를 준비했다.
약속한 14일 오전 8시, 양측은 뉴욕의 모처에서 만났다. 두 나라는 외교 공한을 교환하는 순서, 언론에 알리는 방법 등도 모두 협의했다. 공한은 쿠바가 먼저 한국에 주고, 한국이 그 다음 쿠바에 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약속했던 오전 8시 5분 한국 대표부는 뉴욕 특파원단에 보도자료를 보냈다. 쿠바는 외교부 홈페이지에 이 사실을 알렸다. 공한 교환은 짧았지만 수십년간 수교를 위해 노력해 온 정부의 노력이 전부 녹아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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