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퐁네프의 연인들’로 유명한 프랑스 여배우 쥘리에트 비노슈는 아이가 둘이지만 결혼한 적이 없다. 두 아이는 전 동거인들과 관계에서 낳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스타 영화배우 마리옹 코티야르 역시 영화감독 기욤 카네와 사이에 두 아이가 있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채 2007년부터 쭉 동거 상태다. 두 사람 모두 ‘비혼(非婚) 출산’을 한 것이다. 한국 같으면 손가락질받을 일일지 모르지만, 프랑스에선 전혀 특별하지 않다. 이 나라의 비혼 출산율은 2020년 기준 62.2%로, 한국(2.5%)의 25배에 달한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 10명 중 6명이 결혼하지 않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는 셈이다.
프랑스는 1990년대부터 비혼 출산율이 30~40%에 달했다. 그러다 1999년 시민 연대 계약(Pacte civil de solidarité), 이른바 ‘팍스(PACS)’가 도입되면서 그 비율이 더욱 높아졌다. 팍스는 결혼하지 않은 동거 커플에게도 결혼과 유사한 법적 권리와 의무를 주는 제도다. 본래 프랑스 좌파 주도로 동성 커플의 법적 지위를 허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재는 팍스 혜택을 받는 커플의 약 95%가 이성 간 결합으로, 남녀 간 결혼의 ‘대체재’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 국립인구연구소(INED)에 따르면 2022년 전통적 방식의 결혼은 20만6546건, PACS는 20만9461건으로 거의 1대1을 이룬다.
팍스는 결혼과 비교해 각종 복지 혜택은 그대로 받으면서 사회적·법적 부담은 덜하다. 이준 김앤장 변호사(프랑스 변호사)는 “커플 중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 의사만으로도 쉽게 헤어질 수 있다”고 했다.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은 “배우자·자녀에게 얽매이지 않으며 가정과 양육의 행복이란 (모순적) 목적을 추구하다 보니 팍스를 통한 비혼 출산이 대안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런 트렌드는 혈연 중심의 전통적 가족제도가 점점 해체되고 있는 유럽 전역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현재 유럽 국가 상당수가 팍스와 유사한 제도를 갖추며 비혼 출산율도 높아지고 있다. 2020년 기준 아이슬란드의 비혼 출산율은 69.4%, 불가리아 59.6%, 노르웨이 58.5%, 포르투갈 57.9%에 달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 내 비혼 출산 비율은 40%다. 지난 1980년(18.4%) 이후 급격히 늘어나 1990년 28.0%, 2000년 33.2%로 급격히 증가해왔다. 특히 미 연방정부의 가족·아동 통계에 따르면, 2000년 들어 10~20대 젊은 산모의 미혼 출산은 감소한 반면 30~40대 고령 비혼 산모의 출산이 증가했다. 준비되지 않은 나이에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비혼 출산을 한 경우보다 가정을 꾸릴 만한 나이에 아이를 낳되 결혼 출산 대신 비혼 출산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비혼 출산 증가세는 고학력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다. 미 아동복지 연구 기관인 차일드 트렌즈(Child Trends)는 “대학을 다닌 여성의 비혼 출산 비율이 1990년 17%에서 2016년 43%가 돼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1990년대 이후 비혼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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