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반정부 세력 통제를 대폭 강화하는 ‘국가안보수호조례[維護國家安全條例]’가 19일 홍콩 입법회(의회 격)에서 통과됐다. 중국 정부가 2020년 6월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시행 이후 4년 만에 ‘홍콩 중국화’에 쐐기를 박는 자체적인 법안을 제정한 것이다. 홍콩 입법회의 입법위원 88명과 입법회 주석은 이날 전체 회의에서 홍콩 정부가 제출한 조례를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논의부터 통과까지 단 50일이 걸려 ‘홍콩 반환 이후 가장 빠르게 제정된 법안’에 등극했다. ‘홍콩 기본법(미니 헌법) 23조’에 근거했다는 이유로 중화권에선 이 법이 ‘23조 법’이라고 불린다. 오는 23일부터 발효된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일인자)은 “오늘은 홍콩의 역사적인 날”이라면서 “(영국이 홍콩을 반환한 지) 26년 8개월 19일을 기다려 홍콩의 모두가 힘을 합쳐 영광스러운 역사를 썼다”고 말했다. 23조 법의 의미와 영향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Q1. 이번에 제정된 법은 무엇인가
홍콩 내 반중(反中)·반정부 세력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중국의 홍콩보안법을 보완하기 위해 홍콩이 자체적으로 만든 국가 보안 관련 법이다. 법 제정의 근거가 되는 홍콩 기본법 23조는 홍콩이 자체적으로 국가 분열, 선동과 반란, 국가 기밀 절도 등을 금지하는 법안을 입법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새 법은 중국이 홍콩보안법에 담고자 했던 내용들을 노골적으로 채워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만 연합보는 새 법이 국가 배반[叛國], 국가 분열, 선동·반란, 정부 전복, 국가 기밀 절취, 외국 정치 조직·단체의 홍콩 내 정치 활동, 홍콩 정치 조직과 외국 단체의 교류 등 분야에서 ‘7가지 대죄(七宗罪)’를 규정했다고 분석했다. 대부분은 적용 범위가 모호하게 광범위하다. 새 법에는 특히 ‘외부 세력과의 결탁’을 원천 차단하는 조항이 다수 들어 있다. 외부 세력엔 외국 정부·정당·국제기구 및 일부 외국 기업 등 광범위한 대상이 포함된다. 반역·내란죄는 최대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고, 허위 사실 공표 등 죄질이 비교적 가벼운 경우에도 외부 세력과 공모했다면 10년형에 처할 수 있다.
◇Q2. 왜 제정했나
‘홍콩의 중국화’를 가속하고 반중의 싹을 자르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앞서 중국은 2019년 홍콩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중,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홍콩보안법을 제정했다. 2022년에 취임한 친중 성향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23조 법 제정을 임기 내 주요 과제로 내세웠다. 중국 입장에선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홍콩 통제가 탄력을 받은 현시점이 23조 법을 제정할 절호의 기회로 여겼을 수 있다. 23조 법은 미·중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서구와 가까웠던 홍콩을 폐쇄하는 효과도 있다. 실제로 새 법은 특정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외국 세력과 공모할 경우 독립적인 범죄보다 더 엄중한 처벌을 내리고 홍콩 경제·사회 관련 정보까지 국가 기밀로 간주한다. 중국 입장으로만 보면, 23조 법 제정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홍콩의 이웃인 마카오는 일찌감치 2009년 자체적인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 내용은 23조 법과 비슷하다.
◇Q3. 홍콩 시민들은 반대 안 하나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못 하는 것이다. 왜 그러는지를 이해하려면 중국의 체계적인 홍콩 비(非)민주화 과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홍콩에서 23조 법을 제정하려는 첫 시도는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5년 만에 나왔다. 2002년 9월 홍콩 정부는 3개월의 공공 협의를 거쳐 초안을 내놨다. 이듬해 7월쯤 법안이 통과되리라 기대했지만, 이 법으로 시민권과 자유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여론이 홍콩에서 형성되며 상황이 반전됐다. 2003년 7월 50만명이 거리로 나와 법 제정 반대를 외쳤다. 2012년 행정장관에 오른 렁춘잉도 여론을 의식해 제정을 추진하진 못했다. 그러나 2017년 강경 친중 성향 캐리 람이 행정장관에 오른 이후 시위 탄압을 강화하며 23조 법 제정 여론 조성에 힘썼고, 2022년 취임한 존 리 행정장관이 법안을 쾌속으로 통과시켰다.
◇Q4. 그런데 이번엔 왜 조용한가
최근 몇 년 동안 홍콩보안법 시행과 홍콩 선거법 개정, 장기 코로나 방역으로 홍콩 내 민주 세력이 괴멸됐기 때문이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홍콩 내 반중 시위대는 동력을 잃었다. 중국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같은 해 6월 홍콩 내 반중·반정부 세력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홍콩보안법을 시행했다. 또 2021년 ‘애국자(친중 인사)’만 홍콩의 선출직이 될 수 있다는 선거법을 처리하며 야당 없는 입법부를 차근차근 만들었다. 2022년 12월 19일 실시된 홍콩 입법회 선거는 전체 90석 가운데 89석을 친중계가 차지했다. 2016년 입법회 선거 때 친중 진영이 40석, 민주·중도가 30석을 차지했던 것과 완전히 달라졌다. 이 과정에 반대 여론을 형성해온 빈과일보를 강제 폐쇄하기도 했다. 결국 거리에도 의회에도 23조 법 반대를 위해 싸울 사람이 남지 않게 된 것이다.
◇Q5. 앞으로 홍콩은 어떻게 되나
이번 법안 통과로 홍콩 사회가 더욱 경직되고, 흔들리던 ‘아시아 금융 허브’ 위상도 한층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홍콩 내 대규모 반중 시위가 원천 차단되고 홍콩에서 공권력이 강화되며 시민 자유가 제한될 전망이다. 홍콩의 ‘특별지위’도 회복되기 어려워졌다. 미국은 1992년 홍콩정책법을 제정해 관세·투자·무역 등에서 홍콩을 중국 본토와 다르게 우대했지만, 2020년부터 이러한 지위가 철회된 상태다. 아울러 홍콩의 기업들이 23조 법의 리스크를 고려해 자본과 인력을 다른 곳으로 옮길 가능성도 있다. 미 국무부는 19일 23조 법에 대해 “한때 개방적이었던 홍콩의 폐쇄를 가속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법의 많은 문구와 범죄가 빈약하게 정의됐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잔즈훙 대만·홍콩경제문화합작책진회(策進會) 이사장은 “외국인의 홍콩 여행과 비즈니스가 모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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