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공식회의에서 대북제재를 위한 전문가패널 임기 연장이 부결됐다./로이터 연합뉴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북한의 제재 위반 관련 불법 활동을 감시해 온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이 러시아의 반대로 28일 부결됐다. 전문가 패널 활동 중단으로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대응 조치로 시작된 제재가 ‘감시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됐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09년 결성된 전문가 패널은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준수를 압박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해 한 해 두 차례 제재 위반 관련 보고서를 발표해 왔다. 황준국 유엔 주재 한국 대사는 표결 후 “(전문가 패널 활동 중단은)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에 보안 카메라를 파손한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한국과 유엔은 전문가 패널을 대체하는 새로운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타스 연합뉴스
그래픽=박상훈

유엔 안보리는 이날 공식 회의를 열고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과 관련해 표결했지만 러시아의 반대로 무산됐다. 전문가 패널 임기는 한 해 단위로 연장돼 왔다. 5개 상임이사국 중 하나라도 반대하면 부결되는데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중국은 기권했다.

지난 15년간 대북제재위에서 권한을 위임받아 독자적으로 북한의 안보리 결의 이행을 파악해 온 전문가 패널이 사라지게 되면서 대북제재위의 활동에도 심각한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 패널의 보고서는 북한과 우방국들이 유엔 제재를 위반하며 핵 개발을 하고 불법적 수출입 및 금융 거래 등을 해온 사례를 조사, 폭로해 왔다. 2022년 위성사진을 판독해 북한이 2018년 파괴된 풍계리 핵시설을 복원하는 정황, 2020년 북한 정보기술(IT) 노동자들의 ‘외화벌이’ 및 (북한 수출이 금지된) 사이버 해킹 등을 밝혀내 국제사회의 경각심을 높였다. 제재를 위반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고급 외제차,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명품 가방 등이 북한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사례도 찾아내 발표함으로써 김정은과 측근들을 압박하는 역할도 했다.

지난해까지 전문가 패널 연장을 용인해 온 러시아가 올해 ‘반대’로 입장을 바꾼 이유는 북한과의 무기 거래를 숨기기 위한 측면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러시아와 북한은 지난해 9월 정상회담을 했고 이후 북한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쓸 포탄 100만발, 최신 미사일 수십발 등 무기를 러시아에 지원하고 있다. 북한과의 모든 무기 거래는 유엔 안보리 결의 정면 위반이다. 전문가 패널은 지난 20일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와 북한의 무기 거래를 자세히 파악해 알림으로써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제재 위반을 비난했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오늘의 거부권 행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격을 이어가는 데 사용할 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북한과 결탁했다는 패널 보고를 덮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해 북한이 포탄 등을 지급한 데 대한 ‘보답’ 차원도 녹아 있다. 당장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에 반대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수는 있지만, 북한에 ‘눈엣가시’인 전문가 패널을 없애주면서 얻는 군사·경제적 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문가 패널 활동 중단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더 밀접해진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가 우크라이나를 넘어 국제사회의 실질적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 한 유엔 관계자는 “결국 북한의 러시아 군사 지원이 한반도 핵 위험 고조로 이어진 상황”이라고 했다.

전문가 패널이 없어진다고 해서 대북제재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재가 제대로 지켜지는지 감시하는 공신력 있는 기관이 사라져 북한의 제재 위반에 대해 명확한 실상을 파악하기가 어려워질 전망이다. 전문가 패널은 객관성 유지를 위해 미국·중국·영국·프랑스·러시아 등 상임이사국과 한국·일본·싱가포르 등 총 8국이 파견한 전문가 8명으로 구성해 운영돼 왔다. 전문가 패널이 해체되면서 한국과 미국이 자체적으로 파악한 제재 위반 현황을 발표하는 방안도 검토된다. 하지만 북한과 러시아 등에서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치부해 버릴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는 점에서 대응 방안으로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밀러 대변인은 “(오늘 결과는) 북한을 더 대담하게 만들어 무모한 행동과 도발을 하게 할 뿐 아니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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