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동부에서 3일 오전 7시 58분(현지 시각) 규모 7.2 지진이 발생했다. 대만에서 규모 7이 넘는 강진이 발생하기는 25년 만이다. 강진으로 일부 건물이 무너지고 정전이 일어나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대만 정부는 이번 지진으로 최소 아홉 명이 숨지고 930여 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건물 100여 채가 붕괴한 데다 사고 직후 최소 130여 명이 무너진 건물 아래 갇히는 등 고립돼 사상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대만은 지각과 화산 활동이 왕성한 ‘불의 고리(환태평양 지진대)’에 있어 지진이 잦다.
대만중앙기상국에 따르면 이번 지진의 진앙은 북위 23.77도, 동경 121.67도로 대만 동부 해안 도시 화롄에서 남남동쪽으로 25㎞ 떨어진 곳이다. 지진의 발생 깊이는 15.5㎞로 흔들림은 대만 전역에서 발생했다. 강진 발생 뒤 규모 6.5 등 여진이 최소 76차례 뒤따르기도 했다. 대만연합보는 “중부 타이중시에서는 도로변 절벽이 무너져 버스와 승용차를 덮쳤다. 터널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 TSMC가 있는 대만에서 강진이 발생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아직까지 큰 피해는 없다고 알려졌다. TSMC는 지진 발생 직후 일부 생산 시설을 중단하고 직원들을 대피시켰다. TSMC는 하지만 이날 오후 여진이 진정되자 “대피했던 직원들이 업무에 복귀하고 있다”며 “공사 중인 현장에선 추가 점검 후에 작업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애플 최대 협력사인 전자기기 위탁 제조 업체 폭스콘은 지진 피해 점검을 위해 일부 생산 라인을 중단했다.
우첸푸 대만 지진학센터 소장은 “3~4일 내에 규모 6.5~7 여진이 일어날 수 있다”며 지진 여파가 며칠 더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인구 35만명인 화롄은 타이루거 협곡과 칭수이 절벽 등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이날 화롄에선 진도 ‘6강’, 진앙에서 약 150㎞ 거리인 최대 도시 타이베이에선 진도 ‘5약’의 흔들림이 관측됐다. 타이베이에서도 지진으로 인한 흔들림이 감지됐지만 큰 피해는 없다고 알려졌다. ‘진도’는 지진 영향을 쉽게 알 수 있도록 만든 총 10단계 지진 등급으로 6강은 ‘서 있을 수 없고 기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정도, 5약은 걷는 데 지장이 있는 정도의 흔들림을 뜻한다.
이번 지진은 1999년 대만 중부 난터우에서 규모 7.6 대지진이 발생한 이후 가장 큰 규모다. 당시 밤에 덮친 지진으로 2400명 이상이 사망하고 1만1000여 명이 다쳤다.
이 지진으로 화롄 등에서 여러 건물이 무너지고 잔해에 오토바이와 차가 깔리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화롄 당국은 고등학교 체육관과 운동장 등에 임시 대피소를 마련해 시민들을 피난시켰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화롄 동쪽 해안선을 끼고 있는 수화 고속도로 등 최소 열아홉곳에서 산사태가 나 도로가 폐쇄됐으며, 한때 30만 가구 이상이 정전을 겪었지만 오전 9시 30분쯤 대부분 전기가 들어왔다고 전했다. 대만 당국에 따르면 최소 77명이 진앙 인근의 도로와 건물 등에 갇혔으며 이 중 약 60명은 한 터널에 갇혔다.
소셜미디어엔 지진 발생 직후 산쪽에서 먼지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 8층짜리 건물이 심하게 흔들리고 45도로 기운 모습, 무너진 건물에서 사람들을 구출하는 모습 등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인근 도시인 신베이도 일부 건물이 무너지는 등 피해가 잇따르면서 도시철도 운행이 일부 중단됐다. 곳곳에 무너져 내린 건물에서 소방 당국과 주민들이 아이 등을 구조했다. 신베이시에서는 궈타이밍 폭스콘 창업자가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고급 고층 빌딩의 옥상에 설치된 수영장의 물이 지진 충격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기도 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이날 지진으로 대만 전역에선 약 40대의 항공기가 결항되거나 지연됐다. 대만 매체들은 이 지진이 원자폭탄 32개를 한꺼번에 터뜨린 수준의 위력이라고 분석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긴급 대응반 구성을 지시했으며 이날 아침 중앙재난대응센터에서 회의를 소집해 정부 부처 관계자들과 대응책을 논의했다. 차이잉원은 페이스북에 “군은 지방정부의 요구에 부응하고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 당국은 4일부터 이어지는 청명절 연휴 기간 지진 피해 지역 주민들에게 산사태 위험을 감안해 산에 위치한 조상의 묘에 방문하지 말라고도 경고했다. 대만과 중국에선 매년 이맘때 있는 청명절이 되면 조상의 넋을 기리고자 성묘나 벌초를 한다.
이날 지진 발생 후 주변국에서도 한때 쓰나미(지진해일) 경보를 내리는 등 경계 태세를 갖췄다. 일본 기상청은 이날 오전 서부 오키나와 본섬과 주변 섬 지역에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NHK는 이날 아침 재해 방송을 내보내면서 “쓰나미가 오고 있다. 즉시 높은 곳으로 대피하라”고 했다. 일본 최서남단인 요나구니시마에는 최고 높이 30㎝ 쓰나미가 관측되기도 했다. 이후 일본 기상청은 ‘경보’를 ‘주의보’로 한 단계 낮췄으며, 오후 들어 모든 재난 예보를 해제했다. 마찬가지로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던 필리핀 당국도 경보를 해제했다.
지진 소식이 전해지자 이웃 국가들은 위로 메시지를 보냈다.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주펑롄 대변인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중국) 대륙은 큰 우려를 표하며 이번 재해로 피해를 본 대만 동포들에게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한다”며 “재해와 후속 상황을 긴밀히 예의 주시하면서 재난 구호에 필요한 지원을 기꺼이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이날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지진) 피해를 본 분들께 마음으로부터 위로 말씀을 드린다”며 “바다를 접한 이웃인 대만이 곤란할 때 일본은 필요한 지원을 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화롄 지진에 따른 국내 영향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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