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지난달 공개한 드라마 '삼체'에서 중국 문화혁명을 묘사한 장면./넷플릭스 캡처

“중국인들은 너무 쉽게 화를 낸다.”

지난달 21일 공개돼 넷플릭스 세계 시청 순위 1위(TV 부문)에 오른 드라마 ‘삼체(3 Body Problem)’가 중국에서 비난받자 뉴욕타임스(NYT)는 이렇게 푸념했다. 이 드라마는 SF(공상과학) 소설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휴고상을 받은 중국 작가 류츠신(劉慈欣)이 2006~2010년에 걸쳐 출간한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중국에서 벌어진 극좌 사회운동인 문화혁명(문혁·1966~1976)을 겪으며 인간의 자정 능력에 대해 희망을 버린 중국 과학자가 외계로 메시지를 보내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극 중에서 외계 존재를 지칭하는 말은 중국어 발음을 그대로 살린 ‘싼티(三體)’고, 중국은 우주와 소통 가능한 ‘기술 강국’으로 묘사된다. 원작은 2014년 미국에서 번역 출간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휴가 때 읽는 소설’로 유명해졌다. ‘문화 자강’을 외치는 중국에서 드물게 성공한 문화 콘텐츠 수출 성공 사례가 됐다.

문화혁명 당시 인민재판과 드라마 '삼체' 속 한 장면 문화혁명 시기 중국에서 자행된 인민재판 장면(위 사진). 사진 뒤편으로 마오쩌둥의 초상이 내걸린 가운데, 조리돌림당하는 이들의 목에 반혁명 인사를 뜻하는 흑방(黑帮·검은 무리) 등의 문구가 쓰여 있다. 아래 사진은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의 한 장면. 인민재판이 진행 중인 무대에 "마오쩌둥 만세" "구세계를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자"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X·넷플릭스

그러나 넷플릭스가 삼체를 공개한 이후 중국에선 젊은 애국주의 세대를 중심으로 반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드라마가 중국의 치부인 문혁 당시의 정치 폭력을 직설적으로 묘사하며 서구에서 자국을 망신 주고 있다는 이유다. 웨이보·더우인·샤오훙수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드라마가 중국을 나쁘게 그렸다” “서방의 정치적 의도가 뚜렷하다”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넷플릭스 ‘삼체’는 심오한 원작을 할리우드식 서양 영웅 스토리로 변질시켰다”고도 했다. 올해 1월 15일 똑같은 원작으로 중국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 국영 CCTV에서 상영한 30부작 드라마 ‘삼체’가 훨씬 낫다는 선전도 확산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넷플릭스가 서비스되지 않고 있지만,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나 우회망(VPN)을 이용해 볼 수 있다.

가장 반발이 큰 지점은 드라마의 첫 장면에서 문혁 당시 제자와 아내에게 버림받고 살해당하는 천체물리학자 예저타이의 모습을 조명한 것이다. 당시 1200만 홍위병이 지식인을 핍박한 역사를 직시했는데도 중국의 치부를 들춰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또한 원작에서는 이 장면이 도입부에 등장하지 않고, 1권 초·중반부에 이르러 일곱쪽 남짓 짧게 언급된다는 점도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집중 거론됐다. 중국 자체 제작 드라마 ‘삼체’가 문화혁명을 언급하지 않고 초반부에 2008 베이징올림픽을 조명한 것도 주목받았다.

중국 국영 CCTV에서 올해 1월 15일부터 방영된 드라마 '삼체'. 넷플릭스에서 지난달 공개한 동명 드라마와 원작이 같지만, 문화혁명이 언급되지 않고 도입부에선 2008 베이징 올림픽 준비 과정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중국판 삼체 캡처

그러나 정작 원작을 쓴 류츠신은 소설에서 문혁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한다. 그는 2019년 NYT 인터뷰에서 “소설을 홍위병의 폭행 장면으로 시작하려 했지만 출판사가 검열을 우려해 바꿨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는 “문화혁명과 홀로코스트는 인류 역사상 인간성을 거스르고 일어난 두 큰 사건”이라며 “이 때문에 문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NYT는 삼체에 대한 중국인들의 분노에 대해 “수년간의 검열과 세뇌가 중국과 외부 세계의 관계를 바라보는 중국 대중의 관점을 바꿨다”면서 “드라마 삼체의 성공에 자부심을 느낄 만한데도 너무 쉽게 화를 내고, 엔터테인먼트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분석했다. 오랜 시간 검열에 시달린 중국인들이 이제는 자발적으로 각종 콘텐츠 속에 자국에 부정적인 내용이 있는지 확인하고, 역사적 사실보다 국가 체면을 중시하게 됐다는 얘기다.

이번에 관찰된 중국 대중의 ‘수작(秀作) 판별 기준’ 또한 흥미롭다. 자국에서 촘촘한 검열을 거쳐 상영하는 영화·드라마만큼 중국을 띄워주길 원한다. 이 때문에 드라마 삼체에서 베이징이 아닌 영국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고, 흑인·백인 등 다양한 인종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을 ‘중국 요소(중국 문화 특색을 드러내는 것)’ 배제로 보고 비난한다. 드라마에서 일부 악역이 중국인으로 설정돼 있으면 ‘중국 악마화’라고 해석한다.

통제와 검열 수위가 높아진 오늘날의 중국에서 문혁이 다시 금기가 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덩샤오핑이 문혁은 마오쩌둥의 과오라고 정리했고, 문혁은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자유로운 창작 주제’로 풀어줬다. 그러나 이제는 ‘위험한 주제’가 되어가고 있다. 중국 현지 인터넷의 삼체 리뷰 영상이나 블로그 게시글에서는 문혁을 ‘홍색 시대’ ‘그 시대’라고 우회적으로 지칭한다. 베이징의 한 대학원생은 “중국의 바링허우(80년대생)는 문혁을 공개 비판했고, 주링허우(90년대생)는 문혁이 뭔지 정확히 알았다면, 링링허우(2000년대생) 이후 세대는 문혁이 뭔지 잘 모르고 언급하기도 거북해한다”고 했다.

☞문화혁명

1966~1976년 중국에서 벌어진 극좌 사회운동. 전근대적 문화와 자본주의를 배격하고 사회주의를 실천하자는 명분을 앞세웠다. 1200만 홍위병이 지식인과 주요 인사들에 대해 감금, 구타, 살해를 일삼았다. 최소 15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대약진운동의 실패로 수천만 명이 굶어 죽자 마오쩌둥이 반대파를 몰아내고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벌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 집권한 덩샤오핑은 문화혁명의 과오를 인정했고 공교육 역사 교과서에도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