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파리에서 런던행 비행기에 동승한 제인 버킨과 에르메스 최고 경영자 장-루이 뒤마의 우연한 만남에서 탄생한 '버킨 백'. /에르메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의 유명 가방인 ‘버킨백’이 일반적인 경제 법칙과 권력관계를 뒤집어 놓고 있다. 에르메스가 버킨백을 아무에게나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구매력이 있는 소비자라고 하더라도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없어 벌어지는 일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현지시각) “세계에서 가장 탐나는 핸드백의 미친 경제학”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이러한 현상을 조명했다.

매체는 “버킨백을 구입하면 5분 내에 돈을 두 배로 벌 수 있다”고 버킨백 리셀이 이뤄지는 과정을 소개했다.

매체에 따르면, 기본 블랙 가죽 버킨 25의 매장 가격은 세금을 제외하고 1만1400달러(약 1585만원)다. 하지만 구매자는 이를 즉시 곧바로 리셀 업체에 2배가 넘는 2만3000달러(약 3200만원)에 넘길 수 있다. 리셀 업체는 이를 인스타그램이나 라스베이거스 팝업스토어를 통해 3만2000달러(약4450만원)에 판매한다. 최종 구매자는 정가의 3배 가까이 되는 돈을 주고 버킨백을 사는 것이다.

WSJ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방을 손에 넣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며 “이런 특이한 경제법칙이 소비자와 매장 직원간의 일반적인 힘의 균형을 뒤집어 놨다. 에르메스 부티크에서는 구매자가 고개를 숙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우선 버킨백을 구매하려는 고객은 먼저 매장의 판매 직원과 좋은 관계를 쌓아야 한다. 수많은 대기자 명단 중 누구에게 버킨백을 판매할지를 일차적으로 담당 점원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구매를 원하는 이들은 직원에게 잘보이기 위해 직접 구운 쿠키, 비욘세 콘서트 티켓, 칸 영화제 입장권, 현금 봉투 등을 들고오기도 한다고 WSJ는 전했다.

갑부들의 ‘버킨백 구하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약 1500만원 상당의 버킨백을 사기 위해 1억원 가까이 되는 돈을 지출해 구매 이력을 쌓아야 한다. 직원은 대기목록에 있는 이들 중, 버킨백을 가질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관리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WSJ는 “버킨은 올해 40주년을 맞이하며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며 “버킨백을 들고 다니는 건, 그 착용자가 핸드백 하나에 1만~10만 달러(약 1400만~1억4000만원)를 지출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도 반드시 원하던 가방을 손에 넣게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실상 색상이나 사이즈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직원이 내주는 가방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일부 구매자는 자신의 마음에 드는 색상을 구매하기 위해 리셀 마켓을 이용하기도 한다.

WSJ은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지위를 상징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했다.

에르메스는 구매자들이 버킨백을 더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을 막고자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올해 초 버킨백 가격을 20% 인상한 것도 그 일환이다. 하지만 당초 리셀러 업체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관측과 달리 업체들은 별다른 손해 없이 가격 인상을 고스란히 구매 고객에게 전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버킨백 생산량을 대폭 늘린다면 리셀 시장을 잡을 수 있겠지만, 에르메스로서는 이 방법을 선택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WSJ은 “버킨백 생산량 증가는 리셀러들이 되팔기에 나설 유인을 없애겠지만, 동시에 버킨백이 가진 신비로움도 파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