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 예정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외할아버지 P.V. 고팔란의 고향은 인도 남부 타밀나두주 툴라센드라푸람이다. 며칠 전부터 이 마을 곳곳엔 해리스의 커다란 사진이 걸리고 있다. 유튜브 등엔 힌두교 전통 복장을 입은 주민들이 해리스의 사진을 쓰다듬고 마을 사원에서 기도를 올리며 당선을 비는 동영상이 올라온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를 자진 사퇴한 다음 날인 지난 22일부터 해리스 당선을 기원하는 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이 마을 힌두교 사원 수석 승려인 M. 나트라잔은 인도 매체 인디아투데이에 “모든 강력한 신의 축복을 받아 그(해리스)가 대통령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약 540㎞ 떨어진 안드라프라데시주 바드루루 마을에선 반대로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를 기원하는 의식이 열린다. 이곳 주민들도 사원에 촛불을 밝히고 기도를 한다. 이 마을은 공화당 부통령 후보 J.D. 밴스의 배우자 우샤 밴스의 할아버지 등이 살았던 곳이다.
미국 대선에 인도가 들썩이는 이유는 민주·공화당 대통령 및 부통령 후보가 인도와 밀접하게 관계됐기 때문이다. 바이든 후임으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확실시되는 해리스는 어머니가 인도인(아버지는 자메이카 출신 흑인)이고 트럼프가 지난 15일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J.D. 밴스 상원의원의 배우자 우샤 밴스는 부모가 모두 인도인이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이번 미 대선에선 인도계 여성이 대통령이 되거나 부통령 배우자가 되는, 둘 중 하나의 결론이 날 수밖에 없게 됐다”며 “최근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온 인도계 미국인 커뮤니티에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전했다.
올해 미 대선 정국에선 인도계 인사들이 전면에 부각됐다. 해리스와 밴스 외에도 공화당 경선에서 트럼프와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대사, 성공한 기업가로 역시 공화당 경선에 출마했던 비벡 라마스와미 등도 인도계다. 헤일리와 라마스와미의 부모는 각각 1960년대, 1970년대에 미국에 이민한 인도인이다.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기업계와 경제계에서도 인도계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순다르 피차이(구글), 사티아 나델라(마이크로소프트), 닐 모한(유튜브) 등 빅테크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중에도 인도계가 적지 않다. 지난해 취임한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 총재도 인도인이다.
인도계 인사들이 약진하는 토대 중 하나로는 고급 인력의 미국 이주 증가가 꼽힌다. 미국은 정보기술(IT) 분야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수학·공학·기술 등에 능한 인도인들의 이민·유학을 많이 받았다. 그 결과 미국 내 인도계 인구는 440만명(2020년 기준)으로 한때 최다였던 중국계를 넘어섰다. 중남미나 중국 등 다른 국가 출신과 달리 영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점도 이들이 비교적 잘 정착해 미국 사회의 ‘사다리’를 능숙히 탈 수 있었던 강점으로 꼽힌다. 인도는 토착 언어가 워낙 다양한 데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영향 등으로 영어를 힌디어와 함께 공용어로 쓰고 있다.
수학·공학과 함께 영어까지 가능한 인도계 이주자 중 상당수는 다른 이주자들이 식당 주방이나 공장 등 저숙련·저임금 직종에서 이민 생활을 시작한 것과 달리 IT·의료·공학 등 고급 일자리에 바로 진입했다. 중국·중동·중남미 출신의 ‘아메리칸 드림’ 스토리가 대체로 ‘찢어지게 가난했던 1세대 부모 아래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인 것과 달리 인도계는 이민 1세대부터 고임금·엘리트·전문직으로 일한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해리스의 어머니인 고팔란 해리스는 인도 명문 델리대를 졸업하고 열아홉 살 때 미국으로 유학해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 캠퍼스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캐나다 명문 맥길대에서 교수로 일했다. 우샤 밴스도 아버지는 공학자, 어머니는 UC 샌디에이고에서 분자생물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이들의 성공 뒤엔 인도 엘리트층 특유의 교육열과 타지에서 서로 지지해주는 끈끈한 네트워크가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도의 교육공학자 니디 헤바는 소셜미디어 ‘미디엄’에 “인도 엘리트층은 자녀들이 미래에 어떤 일을 택하든 우위를 점하는 데 필요한 소프트 스킬(리더십 등 타인과 협력하는 능력)을 많이 가르친다”고 했다. 인도 내 엘리트에 해당하는 브라만은 전체 인구의 4.3% 정도인 소수로 알려졌지만, 14억명에 달하는 전체 인구를 감안하면 이들만 약 6000만명으로 한국 인구보다 많다. 해리스도 브라만 출신이다. 다만 성공한 인도 이주자들이 모든 인도인을 대표한다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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