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일본 도호쿠지방 미야기현(県)의 미나미산리쿠 311 기념관. 아침 일찍 어머니 손을 잡고 이곳을 찾은 유타(10)·다이치(8)·치히로(6) 남매가 울음을 터트렸다. 이 지역 미나미산리쿠초(町)에 있는 남매의 집에서 2박 3일간 함께 지낸 한국 대학생 ‘형아’들을 태우고 떠날 버스가 도착하자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보인 것이다. 둘째 다이치 군은 대학생 박승원(26)·류채우(24)·이창현(21)씨에게 “다음에는 꼭 한국에서 만나서 같이 캐치볼 놀이 하자”는 약속을 받아낸 뒤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며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류씨에게 3일만에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을 물었지만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잘 모르겠다”고 했다. 짧은 시간 아이들과 이렇게 많이 정이 들 줄은 몰랐다는 그는 “방바닥에서 게임 하고, 같이 밥 먹고, 밤 되면 불꽃놀이를 하다 보니 어느새 친동생처럼 친해졌다”면서 “이 마을에서는 20대 형들을 찾아보기 어려워서 그런지 아이들이 더 아쉬워하는 것 같다”고 했다. 떠나는 손에 아이들이 쥐여 준 편지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여러가지 놀이를 알려 주어서 고맙습니다. 다이치가” 라고 적혀 있었다.
삼남매의 고향인 미나미산리쿠는 센다이 공항에서도 차로 약 2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인구 1만1000여명의 시골 마을이다. 관광지는커녕 편의점에 가려면 30분은 걸어야 하는 이 작은 동네에 어떻게 한국 대학생들이 방문했을까.
주한일본대사관이 이 지역 관광협회가 마을 활성화를 위해 추진하는 홈스테이 사업과 한국 학생들을 연결해 줬다. 적적한 마을 어르신들 중 희망자를 받아 심사를 거쳐 홈스테이 가정으로 지정하고, 문제 없이 홈스테이가 끝나면 소정의 보수를 지원한다. 이 마을에만 약 20가정이 이런 홈스테이 가정으로 지정돼 있고, 모든 가정이 동시에 학생을 받으면 총 50명 정도를 재울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이날 이곳에서도 류씨 외에 다른 한국 대학생 30여명이 일본 가족들과 눈물의 이별식을 했다.
이 만남이 특히 애틋했던 건 이곳이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은 상처를 안고 있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전국에서 집계된 사망자 약 1만9759명 중 53.4%(1만569명)가 미야기에서 발생했고,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도 1000명이 넘는다. 작지만 활기차던 어촌 마을 미나미산리쿠도 한순간에 폐허가 됐고 젊은이들은 마을을 떠났다. 10여년간 복구에 매진한 결과 물리적인 재해 흔적은 사라졌지만 쓰나미로 가족을 잃거나 집이 휩쓸려간 이들은 아직도 재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때문에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것만으로 마을엔 활력이 돈다. 두 아들을 독립시키고 이곳 산기슭 집에서 단 둘이 지내는 요시다 아쓰코(67)·세이치(69)씨 부부가 선뜻 낯선 한국 대학생들을 홈스테이로 받기로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쓰코씨는 “남학생 셋이 집을 꽉 채워주니 조용함이 사라져서 좋다. 꼭 아들들 어릴 때 생각이 난다”며 “학생들이 설거지와 빨래 널기도 도와줘서 식구가 늘었지만 전혀 힘들지 않고 젊어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이 집에 머문 대학생 배시준(23)씨는 “할머니께서 지역 특산물인 은연어도 갓 잡은 걸로 사다가 직접 사시미를 떠 주시고, 배 터지게 밥을 먹어서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아도 되나 싶다”고 했다. 학생들도 어설픈 실력이나마 요리를 하고 집안일을 돕는다. 강준기(19)씨가 돈가츠를 튀기고, 이준휘(20)씨는 팥소를 넣고 쑥떡을 빚었다. 가지, 피망, 감자, 배추, 강낭콩 등 웬만한 채소는 다 있는 산 위 텃밭에서 수확도 도왔다.
이웃 도시 도메시(市)에서 비닐하우스 6개 동을 농사 짓는 74세 쿠마가이 키쿠코 할머니도 한국 청년들 덕을 톡톡히 봤다. 키쿠코씨는 “혼자 밭일을 해야 하는 처지라 제때 수확 못한 방울토마토가 떨어져 썩어가고 있었는데 밝고 성실한 청년들이 와 주어서 크게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밭일은 해본 적 없다는 김도영(24)씨는 “항상 먹을 줄만 알았지 밭에서 딴 식재료로 직접 요리해본 게 처음”이라며 “여기 와서 맛있는 토마토를 너무 많이 먹어서 한국에 가면 당분간은 안 먹어도 될 것 같다”고 웃었다.
일본은 지방 활성화를 위해 정부차원에서 홈스테이를 적극 장려하고 있다. 특별한 관광자원이 없어도 ‘시골 생활’ 자체가 도시 청소년들이나 외국인들에게는 신선한 체험이 될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삿포로부터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역의 농어촌 마을에서 ‘후루사토(고향)’ 홈스테이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농림수산성은 초중고생 농어촌 장기 숙박 체험 인원을 늘리기 위해 2018년부터 지자체에 교부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후생노동성도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관광용 홈스테이 영업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완화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지역 내 가정집에서 관광객 숙박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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