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영국 노팅엄에서 반(反)이민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 시위자가 경찰에 의해 진압되고 있다. 영국 사우스포트에서 지난달 29일 일어난 흉기 난동 사건의 범인이 이슬람 이민자라는 거짓 정보가 소셜미디어에서 확산하며 시작된 이번 반이민 폭력 시위는 영국 전역에서 계속되는 중이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이날 “증오를 심으려는 극단주의자에게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경찰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AFP 연합뉴스

댄스 교습을 받던 여자 어린이 세 명을 숨지게 한 지난달 29일 영국의 흉기 난동 사건에 대해 “이슬람 이민자가 범인이다”라는 거짓 정보가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영국 전역으로 폭력 시위가 번지고 있다. 범인이 이슬람 이민자라는 거짓 정보에 속아 넘어간 군중이 영국 곳곳에서 연일 폭행과 방화를 동반한 대정부 규탄 집회를 개최하면서다. 영국 정부가 범인이 이슬람교도가 아니라고 거듭 발표했지만, 거짓 정보가 사실보다 훨씬 빨리 퍼지면서 파장이 커지는 상황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사태는 거짓 정보와 극단주의가 만나 폭력으로 번진 전형적인 사례”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거짓 정보 확산 과정 등을 감안할 때 러시아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BBC에 따르면, 영국 전역에서 일어난 폭력 시위로 200명 이상이 체포됐다. 리버풀·브리스틀·맨체스터·블랙풀·벨파스트 등에서 시위대가 벽돌·유리병을 던지고 상점을 약탈하고 경찰을 폭행하는 등의 과격한 폭력 집회가 이어졌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3일 “증오를 심으려는 극단주의자에게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경찰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다”며 불법 폭력 시위에 엄정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태의 발화점은 지난달 말 리버풀 인근 사우스포트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이다. 당시 지역 댄스 교실에 침입한 범인이 흉기를 휘둘러 어린이 세 명이 숨지고 열 명이 다쳤다. 그런데 사건 발생 소식과 함께 범인의 신원이 이슬람계 이민자인 ‘알리 알샤카티’이며 범행 전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를 외쳤다는 글이 소셜미디어에 빠르게 확산했다. ‘알라후 아크바르’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테러를 벌일 때 외치는 말로 알려졌다. 모두 거짓 정보다.

실제 범인의 이름은 완전히 달랐고, 이민자도 이슬람교도도 아니었다. 기독교 국가인 르완다 출신 부모를 두었지만 영국에서 태어나 자란 영국인이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소셜미디어에 퍼진 가짜 뉴스를 진짜라고 믿은 군중은 댄스 교습소가 있는 사우스포트의 이슬람 사원 인근 건물의 벽을 부수고 경찰차에 불을 질렀다.

이번 사건은 소셜미디어의 몇몇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거짓 정보를 실어 나를 때 그 여파가 얼마나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거짓 정보가 전국적 폭력으로 이어진 과정은 이렇다. 사건이 발생한 직후 X(옛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미디어에 범인의 신상에 대한, 출처를 알 수 없는 거짓 정보가 급속도로 퍼졌다. 범인이 이슬람교를 믿는 망명 신청자, 시리아에서 온 불법 체류자라는 내용의 게시물들이 수백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극우 성향을 가진 유명인들이 ‘퍼 나르기’에 가세하며 뜬소문은 사실처럼 굳어졌다. 반이슬람 선동가인 토미 로빈슨은 누군가 “왜 우리 정부는 ‘무고한 어린이’를 찌르라고 이 시리아 사람을 들여보냈는가?”라고 쓴 글을 자신의 계정에 공유했다. 로빈슨은 이번 폭력 시위의 가장 큰 배후로 의심받는 극우 단체 ‘영국수호리그(EDL)’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전직 킥복싱 선수이자 ‘극우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앤드루 테이트는 사건 당일 X에 “어린 소녀 여섯 명을 찌른 불법 이민자가 배를 타고 영국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그가 누구인지, 어디 출신인지 모른다”고 말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이 동영상은 1490만회 이상 조회됐다. 두 게시물 모두 사실과 다른 내용이다. 이런 거짓 정보에 자극받은 극우 성향 시위대가 거리로 나오고 폭력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자 영국 사법 당국은 피의자의 실명(액설 무간와 루다쿠바나)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또 이슬람교도가 아닌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르완다 이민자 2세라고 ‘사실 확인’을 했다. 그럼에도 ‘반이슬람’ 구호만 줄었을 뿐 폭력 시위는 주말 내내 이어졌다. 여기에 이민자들을 옹호하는 단체들이 ‘맞불 집회’까지 열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영국 정부는 이번 사태를 돌발 상황이 아닌, 특정 세력의 공작으로 보고 있다. 스타머 총리는 지난 1일 “(이번 사태가)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폭력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모인 극우 세력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결과”라고 했다. 그는 이날 전국 경찰서장과 긴급회의를 한 후 집회 배후에 있는 극우 단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폭동을 진압하는 통합 부서를 경찰청 산하에 신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거짓 정보가 현실 공간으로 확산해 실질적 피해를 주는 데 대한 소셜미디어 운영사의 책임론으로도 번질 전망이다. 스타머 총리는 선동을 주도하는 극우 세력만큼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한 허위 정보 유통을 방관한 소셜미디어 운영사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셜미디어 기업들을 향해 “폭력 소요가 분명히 온라인에서 부추겨졌다. 이는 범죄이고 당신들의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온라인으로 (폭력을) 선동하는 것은 범죄이며 이는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다.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우리가 모두 즐기는 기회를 주지만 거기에는 책임도 뒤따른다”고 강조했다.

NYT는 “영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온라인상의 거짓 정보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으려 고심해 왔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은 개인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과 맞물리면서 대부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규제 없는) 회색 지대로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우 테러 선동이나 ‘리벤지 포르노(당사자 동의 없이 유포되는 음란 영상)’ 등을 소셜미디어 운영사가 신속하게 차단해야 한다는 ‘온라인 안전법’을 지난해 도입했지만, 이번 사건처럼 특정 종교를 헐뜯는 거짓 게시물이 ‘테러 선동’에 들어가는지는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거짓 정보 확산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초기 거짓 정보를 퍼트린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웹사이트 ‘채널 3 나우’가 러시아와 연관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합법적 미국 뉴스 매체를 가장하지만, 다른 언론의 기사와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수집하는 웹사이트인 이곳에 ‘가짜 뉴스’가 실리자마자 러시아 국영 매체 러시아투데이(RT)가 이를 받아 기사를 냈기 때문이다. RT는 영어·불어·스페인어·아랍어 등으로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러시아의 입장을 대변해 왔다. 영국 정부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가짜 뉴스와 허위 주장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러시아 선전·선동가들과 국영 매체들을 대거 제재하면서 RT의 고위 간부와 모기업도 포함한 바 있다.

국가적 혼돈을 불러오는 뜬금없는 헛소문이 러시아의 소행이라는 의심은 최근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가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히 확산했던 프랑스의 ‘빈대 소동’에도 러시아가 관여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상에 어느 정도는 있을 수밖에 없는 빈대 문제를 지나치게 과장, 이민자 때문에 빈대가 널리 퍼진다는 소문을 일으켜 극우 세력의 반대 시위를 조장하는 방식이 이번과 닮았다는 분석이다. 다만 러시아의 개입에 대한 증거가 빈약하고, 여러 갈래의 이야기로 혼란과 분열을 조장하는 러시아발 가짜 뉴스 전술과는 이번 양상이 다르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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