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라혼에게 반한 것 같아/루이뷔통 벨트를 메고 구찌 모자를 쓰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그 남자 말야… 이렇게 훅 반한 적이 없어/그 남자에게선 향수 가게를 통째로 산 것 같은 냄새가 나.”

1970~80년대 스타일의 복고 감성이 물씬한 관현악 반주에 맞춰 여성이 노래한다. 발매 한 달도 되지 않아 세계 최대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의 집계 공식 차트 중 하나인 ‘글로벌 바이럴 차트’ 3위까지 치고 올라간 독일 뮤지션 버터브로의 ‘버크널트 인 아인 탈라혼(탈라혼과 사랑에 빠지다)’이다.

음원 재킷에는 가슴 윤곽이 훤히 드러난 재킷을 입은 금발의 젊은 여성이 그려져 있다. 이 여가수가 노래를 부른 ‘버터브로’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노래하는 목소리와 선율, 악기 연주, 심지어 재킷 그림까지도 모두 인공지능(AI)이 만들어냈다. 노랫말만 ‘버터브로’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뮤지션 요슈아 와구빙거가 썼다.

‘글로벌 바이럴 차트’ 는 전 세계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노래들로 매기는 순위다. 이 노래는 미국·일본·영국에서 이어 세계 4위 음악 시장인 독일의 국내 음원 차트에서도 48위까지 올랐다. 사람이 전혀 개입하지 않고 AI로만 만든 노래가 전례 없는 돌풍을 일으키면서 대중음악계의 한 흐름이 될지 주목받고 있다.

AI가 만든 노래들이 사람이 작곡한 노래를 제치고 인기곡 차트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예상은 예전부터 나왔다. 작곡법을 모르는 사람들도 쉽게 AI로 그럴듯한 노래를 만들 수 있고, 이미 광고 음악 등 일상에서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노래의 인기 몰이는 다른 차원에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인종적 고정관념을 바탕으로 이민자를 조롱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곡 제목 ‘탈라혼’은 ‘이리 와’라는 뜻의 아랍어 ‘태알 후나’를 독일 스타일로 발음한 것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폭증하는 이민자 때문에 반이민 정서가 팽배하고,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시끄럽게 떠드는 일부 젊은 남성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팽배해져 이들에 대한 멸칭으로 자리 잡았다.

“착한 소녀가 나쁜 소년과 사랑에 빠진다”는 고전적 가사 구조를 차용한 이 노래에서 ‘나쁜 소년’ 격인 탈라혼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치품으로 치장하고 지독한 향수 냄새를 풍기는 허세 가득하고 한심한 사내로 묘사된다.

이 때문에 독일 사회에서는 이 노래에 대해서 풍자와 차별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걷고 있는 내용도 문제거니와, 잘못된 고정관념이 AI라는 도구를 통해 중독성 강한 유행가로 쉽게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오고 있다. 독일 음악 잡지 ‘디푸스’의 필진 펠리시아 아가예는 “독일의 우익 단체는 ‘탈라혼’이라는 단어로 이슬람·외국인 혐오증을 부추기고 있다”며 “노래를 만든 사람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고, 거부감 없이 사용되도록 방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와구빙거는 한 인터뷰에서 “누구를 차별할 의도는 없었고, 노골적인 남성 우월적 행동을 조롱하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라면서도 “소셜미디어에서 소문을 낼 수 있는 트랙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의도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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