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중국 광저우 모터쇼에서 ‘전기차 입수(入水) 쇼’가 펼쳐졌다. 중국 전기차 회사 비야디(BYD)의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U8′는 야외 행사장에 설치한 길이 10여m짜리 풀장으로 들어가 물보라를 일으켰다. 이 전기차는 수륙양용이다. 물에 들어간 후 배처럼 떠서 10분 동안 원 다섯 바퀴를 그리자 관람객 사이에서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로봇 같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응급 수중 부양[應急浮水]’이란 이름이 붙은 이 기능은 30분 동안 가동할 수 있다. 모터가 각기 달린 전기차 네 바퀴가 헤엄치듯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며 물속에서 방향을 미세하게 조정한다고 했다. 앞서 BYD 선전 본사에서 이 차를 시승했을 때도 놀랐다. 제자리에서 차가 360도 도는 ‘탱크턴’, 바퀴 하나가 펑크 나도 인공지능(AI)이 나머지 바퀴로만 달릴 수 있도록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무게 분산’ 기술 등 이제껏 본 적 없는 첨단 기능이 많았다.
내년 1월 미국 대통령에 취임할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제재 등 강력한 ‘기술 규제’를 예고해 왔다. 하지만 중국에서 지내다 보면 국가가 주도하는 테크 기업 지원과 규제 완화로 최첨단 기술이 일상에 확산해 빠른 변화가 이뤄지고 있음을 매일같이 느끼게 된다. 중국 전체가 미래 기술의 거대한 ‘테스트베드(실험장)’가 되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베이징에선 서울과 달리, 로봇과 부대끼며 사는 것이 일상이 됐다. 20일 찾은 편의점 체인 볜리펑에서는 키가 2m인 장신(長身) 로봇이 AI 카메라를 달고 매장 구석구석을 다니며 재고를 확인하고 있었다. 중국 소셜미디어 ‘샤오훙수’에서 ‘전봇대 로봇’ ‘길막 로봇’이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친근한 존재다. 쇼핑몰에 갔더니 귀엽게 생긴 ‘아이스크림팔이’ 로봇이 인파 사이를 누비며 “QR코드를 스캔하고 아이스크림을 사주세요”라고 애원했다.
중국 대도시나 유명 관광지에서 진짜 개만큼 많이 보이는 존재가 로봇 개다. 지난달 중국 산둥성에 있는 명산인 태산엔 쓰레기통 운반용 로봇 개가 투입됐다. 중국의 로봇 제작 업체인 ‘유니트리’에서 만든 ‘B2′란 이름의 4족(足) ‘짐꾼 로봇’이다. 최대 120㎏짜리 짐을 싣고 가파른 경사로를 거미처럼 빠르게 오르내리며 쓰레기통 등 이런저런 짐을 운반한다. 중국에선 원래 사람이 지게를 지고 짐을 날라주고 돈을 받곤 했는데, 로봇이 대체한 셈이다. 지난 9월 중국 선전시에서 열린 텐센트 연례 행사에선 중국 로봇 회사들이 풀어놓은 로봇 개 두 마리가 관람객 사이를 누볐다. 손을 내밀자 앞발을 살포시 얹으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한 텐센트 직원은 “머리가 있으면 고가(高價), 머리가 없는 이 녀석은 저가 모델”이라고 했다. 지난 12일 개막한 중국 최대 항공 박람회인 주하이 에어쇼에서는 ‘로봇 늑대’도 공개됐다. 군용 로봇인 이들은 무리 지어 다니며 역할을 분담하는 늑대처럼, 작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임무를 수행한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자 신규 승용차 판매 중 전기차 비율이 이미 절반을 넘은 중국의 전기차는 ‘스마트화’의 차원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다. 가전제품으로 유명했던 빅테크 기업 샤오미는 지난 3월 첫 전기차를 출시했는데, 이달 15일 광저우 모터쇼에서 ‘주차장에서 주차장까지(HAD)’라 불리는 최첨단 자율 주행 기능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대당 4000만원 정도인 ‘SU7′ 모델에 장착된 이 기능은 운전이 까다로운 주차장에서도 시속 20㎞ 정도로 움직이면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커브를 돌고 부드럽게 감속했다. 중국의 차량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선 이미 “샹거라오쓰지(像個老司機·베테랑 운전수 같다)!”라는 평가가 나오는 중이다.
비야디 등 중국의 아홉 업체는 지난 6월 중국에서 자율 주행 3·4단계 도로 테스트 승인을 이미 받았다. 4단계는 인간 개입이 거의 필요 없는 단계다. 미국의 대표 전기차 테슬라가 현재 이보다 낮은 2~3단계 자율주행 수준(상용화 기준)을 갖췄다. ‘중국판 네이버’인 바이두는 구글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무인 택시 운영을 하고 있다. 올해 6월부터 우한시 전역에서 보조 운전자 없는 무인 택시를 약 500대를 운행 중인데, 연말까지 1000대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광화문에서 서초구 정도까지 거리인 15㎞를 이동한다고 해도 택시 요금이 약 2.5위안(약 500원)에 불과하다.
2000년대 초 신용카드를 건너뛰고 모바일 결제로 직행한 중국의 금융 서비스 또한 다시 한 단계 진화 중이다. 지난 9월 선전의 한 편의점에서 과자를 고른 다음 계산대로 가서 단말기 위 5㎝ 높이에 손바닥을 올리니 약간의 온기가 느껴지며 ‘결제 완료’ 음성이 들렸다. 텐센트가 개발한 이 시스템은 지문과 정맥 패턴 등을 인식해 결제를 한다. 생체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라 거부감이 들 법도 한데 이미 곳곳에서 얼굴 인식 기능이 쓰이는 중국이어서인지 께름칙하다는 평가는 거의 못 봤다.
한때 ‘기술 후진국’으로 여겨졌던 중국이 거대한 기술 실험실이 되기까지 국가의 전폭적인 산업 보조금 지원, 기업의 상용화 진입 장벽을 낮추는 규제 완화, 개인 정보 유출을 덜 민감하게 여기는 중국인들의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중국이 2010년 12차 5개년(2011~2015년) 계획 발표 이후 일관되게 전략 산업으로 밀어주는 IT·로봇·전기차·우주항공 등 분야에서 다른 나라에서 보기 드문 신(新)상품과 서비스가 시중에 쏟아지는 상황이다. 지방정부 간 기술·산업 유치 경쟁도 민관 협력의 시너지를 높였다는 분석도 있다. 이미 전 세계 산업용 로봇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 설치되고 있고, 드론(무인기) 시장은 90% 이상을 중국이 장악한 상태다.
한편 이런 빠른 기술 개발·도입의 이면엔 정부의 과도한 민간 기업 경영 개입과 개인 정보 침해 등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의 장기 경제성장 전략에 따라 개별 기술을 선도할 ‘챔피언 기업’을 정하고 이 기업들이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과정에서 과잉 생산과 시장 교란이 일어나는 일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이런 첨단 기술들이 국민에 대한 감시·통제를 강화하는 도구로 쓰일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중국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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