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하원이 4일 밤 미셸 바르니에(73) 총리 불신임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바르니에 총리와 내각(각 부 장관들)이 총사퇴하게 됐다. 프랑스 하원은 극우 국민연합(RN)과 좌파 연합의 거야(巨野)가 이끌고 있다.
지난 7월 여당의 총선 패배 이후 두 달 만에 어렵사리 임명한 총리가 90여 일 만에 쫓겨나면서 프랑스 정국은 또다시 혼란에 직면하게 됐다. 바르니에 총리는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도 안게 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제 야당의 반대를 뚫을 새 총리를 찾아 내놓거나, 아니면 야당이 내세우는 총리 후보를 받아들여야 하는 난제를 안았다. 이번 사태와 관련된 핵심 궁금증을 다섯 문답으로 정리했다.
Q1. 총리, 불신임된 이유는
야당이 반대하는 내년도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려 프랑스 헌법 49조 3항을 발동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긴급 사안에 대해 의회 동의 없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하지만 의회는 총리(내각)를 불신임함으로써 이를 견제할 수 있다. 야당은 즉각 불신임안을 냈고, 결국 재적 의원 574명 중 331명(약 58%)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바르니에 총리의 예산안은 현재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의 6%가 넘는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해 총 600억유로(약 90조원) 규모의 공공 지출 감축과 증세를 하는 내용이었다. 야당은 이를 “국민을 가난하게 만든다”며 격렬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그 이면엔 지난 총선에서 야권이 압승했음에도 총리 자리를 넘기지 않은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반발이 내재돼 있다.
Q2. 불신임되면 총리는 끝인가
프랑스 헌법 50조는 “의회에서 불신임된 총리는 대통령에게 사표를 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총리 제청으로 임명된 각 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총리와 장관들은 이르면 5일 중 마크롱에게 사임 의사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다만 바로 업무에서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새 총리와 장관들을 임명할 때까지 임시 내각 체제로 정부의 일상 업무를 유지한다.
총리가 물러나면서 새 예산안과 관련 법안의 정부 단독 입법도 자동으로 무산된다. 그러나 미국처럼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아 연방 정부 업무가 마비되는 ‘셧다운’ 사태는 벌어지지 않는다. 프랑스 헌법 47조와 공공 재정법이 전년도 예산을 바탕으로 필요한 기본 지출을 월 단위 집행할 수 있도록 ‘안전 장치’를 마련해놨다.
Q3. 자주 있는 일인가
이번 사태는 1962년 10월 조르주 퐁피두 총리 불신임 이후 62년 만이다. 헌법 49조 3항은 지금까지 100회 이상 발동됐지만 대부분 총리 불신임까지 가지 않았다. 재적 의원의 과반수(현재 288명)가 찬성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는 데다, 대통령과 야당이 극한 대립을 하지 않는 이상 야당도 정국 불안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번 불신임안 가결은 야권의 의석수(360여석)가 여권(210여석)의 1.7배에 달하는 등 원내 세력 차이가 워낙 컸고, 극우·극좌가 주도하는 야당과 마크롱 간 갈등이 심각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Q4. 대통령 퇴진 가능성은
극우 RN과 극좌 정당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는 연일 마크롱의 조기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총리와 내각의 불신임과 관계없이 임기를 보장받는다. 마크롱 역시 “나는 국민에게 두 번 선출된 대통령이며, 내 임기를 끝까지 수행할 것”이라며 퇴진 요구를 일축한 상황이다.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대통령이 총리의 불신임으로 물러난 적도 없다. 다만 1969년 4월 샤를 드골 대통령이 지방자치제 개혁안 등을 두고 실시한 국민투표에서 패배한 후 자발적으로 사임한 사례가 있다. 이는 의회나 헌법적 절차가 아닌 정치적 결단에 따른 것이었다.
Q5. 전망은
한동안 마크롱과 야당이 새 총리 임명을 놓고 힘겨루기를 할 전망이다. 마크롱은 가능한 한 빨리 새 총리를 지명하려고 한다. 후보로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국방장관, 프랑수아 바이루 민주운동(MoDem) 대표, 베르나르 카즈뇌브 전 총리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7월 조기 총선 이후 총리 자리를 노려온 RN과 좌파 연합이 이를 그냥 두고 볼 가능성은 작다. 야당이 원하지 않는 새 총리가 지명되면 또 불신임안이 상정될 수 있다. 프랑스 헌법 49조에 따르면 재적 의원 10분의 1(현재 기준 58명)이 참여하면, 언제든 불신임안 제출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앞으로 상당 기간 야당과 일부 노조가 주도하는 반(反)마크롱 시위 등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프랑스의 대통령과 총리
프랑스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요소를 결합해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분담하는 독특한 정치체제(이원집정부제)를 갖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이 직접 뽑는다.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최고 책임자로 국방과 외교, 정부 정책 방향 설정 등 중대사를 관장한다. 필요시 의회를 해산할 권한도 있다.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정부 수반으로 행정부를 이끌고 법안 실행, 예산집행, 행정감독 등의 실질적 통치 역할을 한다. 이는 의회 다수의 신임이 전제된 것으로, 의회는 총리를 불신임해 실각시킬 수 있다. 만약 여소야대 등의 상황으로 총리의 정치적 입지가 불안할 경우, 대통령은 야당이 추천한 인물이나 중립적 인사를 총리로 임명할 수 있다. 총리와 대통령이 서로 다른 당에서 나오면 ‘동거 정부(cohabitation)’라고 한다. 야당 총리는 내정에 대통령의 영향을 차단하고 더 큰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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