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왼쪽)가 6일 사임 의사를 밝혔다. /AFP 연합뉴스

2015년 11월부터 캐나다를 이끌어온 쥐스탱 트뤼도(54) 총리가 10년 만에 물러난다. 트뤼도는 6일 수도 오타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 선거에서 내가 최선이 될 수 없다는 점이 명확해졌다”며 사임 의사를 밝혔다. 진보 성향 집권 자유당의 대표도 함께 맡고 있는 그는 차기 당대표가 선출되는 대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의회 다수당이지만 의석수 과반을 확보 못 한 상태인 자유당은 오는 3월 24일까지 트뤼도의 후임을 뽑기로 했다. 예정된 총선일은 10월이다. 그러나 주요 야당이 내각을 불신임해 조기 총선이 실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트뤼도는 마흔네 살이던 2015년 자유당을 총선 승리로 이끌며 집권했고 소수자 권리 옹호, 선제적 난민 수용 같은 정책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경제 침체와 이민자 폭증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 등으로 최근 지지도가 급락했고, 당내에서도 사임 요구가 잇따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1기 내내 미국과 갈등한 트뤼도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한 트럼프의 ‘귀환’이 확정되면서 위기에 몰렸다. 트럼프는 지난달 “캐나다에서 수입하는 물품의 관세율을 25%까지 올리겠다”고 압박했고 캐나다를 ‘51번째 주(州)’, 트뤼도를 ‘주지사’라 부르며 깎아내렸다. 뉴욕타임스는 6일 “한때 진보의 아이콘이었던 트뤼도가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 구호)의 조롱감으로 전락했다”고 했다.

◇트뤼도 “사임” 직후, 트럼프 “51번째州” 또 조롱

한편 국제사회는 트럼프 2기가 출범하는 오는 20일부터 벌어질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전례 없는 규모의 이민자 추방, 파리기후변화협정 재(再)탈퇴, 러시아·우크라이나 조기 종전 협상 강행 등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기조를 뒤집는 결정이 취임 당일에 동시다발로 쏟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래픽=박상훈

트뤼도는 두 차례 총리를 지낸 캐나다 정계의 거물 피에르 트뤼도의 아들로 서른일곱 살이던 2008년 하원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의석 34석의 ‘미니 야당’으로 쪼그라들었던 자유당을 이끌고 2015년 10월 총선에서 338석 중 184석을 쓸어 담는 압승을 이뤄내며 총리에 올랐다. 젊은 나이에 훤칠한 외모를 갖춘 그는 여성·소수자 중용과 난민의 적극 수용 등 진보 정책을 과감하게 실행하는 진취적 지도자로 인기를 누렸다. 역시 진보 성향인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과도 관계가 좋았다. 그러나 2017년 집권한, 보수 성향의 트럼프와는 정상 외교 등의 자리에서 수차례 낯을 붉혔다.

트뤼도가 경제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자 캐나다 내 민심도 냉랭해졌다. 2019년 10월 총선에서 가까스로 1당을 유지했지만 의석은 절반에 미달하는 157석으로 뚝 떨어졌다. 트뤼도는 코로나 여파가 가시지 않던 2021년 9월 의회를 전격 해산하고 예상보다 2년 앞당겨 조기 총선을 실시했지만 결과는 거의 바뀌지 않았다. 코로나 이후 악화한 고물가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이민자 급증으로 청년 실업률이 오르고 주거 비용이 상승한다는 비판이 잇따르면서 트뤼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가 돌아와 ‘관세 최고 25%’를 공언하자 국민들의 트뤼도에 대한 불신은 더 커졌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6일 오타와에 있는 총리 관저 앞에서 사임을 발표하는 모습. /AP 연합뉴스

트럼프는 당선된 후 1기 때 자신과 껄끄러웠던 트뤼도를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관세 문제를 해결하려 플로리다 마러라고까지 날아간 트뤼도와 만찬하는 자리에서 (관세 문제가 골치 아프면)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것은 어떤가”라며 면전에서 노골적으로 조롱했다. 이후에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트뤼도 ‘주지사’를 만났다” “위대한 캐나다주” 등의 표현을 써가며 캐나다를 대놓고 깎아내렸다.

트뤼도는 ‘트럼프표 고관세’로 인한 경제 타격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며 내년 봄 15만캐나다달러(약 1억5000만원) 이하인 이들에게 일괄적으로 250캐나다달러(약 25만원)를 지급하겠다는 부양책을 지난달 발표했다. ‘돈 풀기’에 가까운 계획은 그러나 같은 당 소속인 재무 장관의 반발에 이은 사임으로 이어졌다. 국민 여론도 악화됐다. 다음 총선에서 자유당은 보수당에 정권을 넘겨주리라는 전망이 많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자유당 지지율은 21%로 보수당(47%)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트럼프는 트뤼도가 사임을 발표한 6일에도 소셜미디어에 “많은 캐나다인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고 싶어 한다”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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