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남성 A(26)씨는 도쿄의 한 5평 남짓한 원룸을 시세의 반값 이하로 구해 살고 있다. 역세권인데다 2평짜리 다락방도 붙어 있어 평균 시세는 월 10만엔(약 94만원)이지만, 단 4만엔에 계약한 것이다.
A씨가 이런 싼 가격에 들어올 수 있었던 건, 이 집이 평범한 집이 아니기 때문이다. 3년 전, 이곳에 살던 사람이 목을 매달아 자살해 한동안 공실로 있던 곳이다. 일본에선 이처럼 자살, 강도, 고독사, 화재 등이 발생했던 집을 ‘사고 물건(事故物件)’이라고 부른다.
사고 물건은 사건·사고의 정도에 따라 집값이 크게는 반값 이하로 떨어지지만, ‘저주받은 집’이란 인식이 짙어 빈집으로 방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도쿄를 중심으로 전국 집값이 상승하면서 소외됐던 사고 주택의 수요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지난 4일 현지 매체 아에라닷 등이 보도했다. 사고 주택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부동산 업체까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도쿄의 한 부동산 업체가 고객 53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사고 물건에서 살아봤다’는 응답자는 전체 5%였다. 아울러 20%는 ‘사고 물건에 대한 인식이 앞으로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답했다. 최근 도쿄 집값이 21평 아파트를 기준으로 전년 대비 20% 이상 치솟은 데다, 고질적인 저임금과 고물가 문제까지 겹쳐 사고 주택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부동산 업자들은 2021년 10월 발표된 국토교통성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고 주택에 대한 정보를 임차인에게 제공해야 한다. 사고 발생 3년이 지나면 이 같은 의무가 사라지지만, 전국 사고 주택 누적 현황을 제공하는 민간 웹사이트까지 있다.
사고 물건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성불 부동산’ 창업자 하나하라 코지씨는 아에라닷에 “최근 부동산 설명회에서 사고 물건에 대한 인식을 묻자 참가자 2명 중 1명이 긍정적으로 답했다”고 했다. 특히 학생, 사회 초년생 등 수입이 적은 이들 사이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다. 하나하라씨는 “코로나 사태를 거쳐 집에 대한 인식이 바뀌며 같은 값에 더 넓은 곳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도 배경 중 하나”라고 했다.
현지 언론은 사고 주택의 인기 상승이 초고령화로 인한 ‘빈집 문제’의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본에선 노인 인구 상승과 함께 자택에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데, 살기 흉흉하고 수리비가 부담된다는 등 이유로 방치된 빈집이 전국 1000만채에 달한다. 아에라닷은 “(국민들이) 사고 물건에 대한 기피 감정을 되짚어보는 시기가 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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