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가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정책을 4년 만에 종료하기로 했다고 로이터가 11일 보도했다. DEI 정책은 인종·성·성 정체성 등에서 소수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줘 포용적인 환경을 갖춰나가자는 것으로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행정부가 기업·학교·공공기관·주 정부에 적극 독려해왔다. 미국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정치적올바름(PC)과 워크(woke) 문화를 상징하는 정책으로 인식됐다.
그런데 PC와 DEI를 적대시해온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잇따라 DEI 정책 폐기를 선언하고 있다. 메타는 최근 직원 공지에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직원들을 계속 찾겠지만 다양성 기조에 맞춘 기존 DEI 방식은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창업자는 10일 친(親)트럼프 성향 유명 팟캐스트 진행자 조 로건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모든 사람을 환영하고 좋은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기본적으로 ‘남성성은 나쁘다’로 말하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말해 DEI 폐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널드는 이달 초 고용·승진·공급업체 선정 등에 DEI 정책을 더 이상 실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유통업체 월마트도 지난해 11월 ‘DEI’ 용어 사용을 아예 중단하고 사내 인종 평등 교육도 축소하겠다고 했다. 전자 상거래 기업 아마존도 지난달 직원 공지에서 “다양성 확보와 관련한 구시대적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있다”며 DEI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나타냈다.
탈(脫)DEI 움직임은 만화 줄거리까지 바꾸고 있다. PC 성향이 가장 강한 기업으로 알려진 월트디즈니는 자회사 픽사 스튜디오에서 제작해 방영 예정인 청소년 애니메이션 시리즈 ‘이기거나 지거나(Win or Lose)’에서 당초 등장했던 성전환자 캐릭터를 빼기로 했다.
이런 흐름은 진보 진영이 중점을 두는 환경 분야에서도 두드러진다. 미국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지난 9일 고객에게 보낸 서한에서 “‘넷제로 자산운용사 이니셔티브’(NZAMI)에서 탈퇴했다”고 밝혔다. NZAMI는 2050년까지 넷제로(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하는 탄소 중립)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지지하는 대형 금융기업들의 모임으로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전인 2020년 12월 결성됐다. 그러나 “기후 변화는 사기”라고 주장하며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 폐기와 화석 연료 정책 부활을 공언한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하자 NZAMI 참여사들이 연쇄 이탈하고 있다. 지난달 시티그룹·웰스파고·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이 잇따라 이탈했고, 블랙록의 탈퇴로 이어진 것이다.
미국 기업들이 DEI 정책을 앞다퉈 도입한 계기는 대규모 인종차별 반대 시위 BLM(흑인 목숨도 소중하다)를 촉발시킨 2020년 5월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었다. 당시 대선에서 유색인종의 압도적 지지를 얻은 바이든이 승리하면서 주요 기업과 학교·공공기관의 DEI 정책 도입은 대세가 됐다. 그러나 ‘다수’라는 이유로 배척받고 실력대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등의 역차별 논란 등 부작용이 잇따랐다. 여기에 지난해 6월 연방 대법원이 대학의 소수 인종 우대 정책(어퍼머티브 액션)에 위헌 판결을 내리고,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전에서 승세를 굳히면서 미국 내수 기업부터 DEI 폐지 행렬이 시작됐다. 농업용품 업체 트랙터 서플라이(6월)와 존 디어(7월), 주택용품 업체 로우스(8월) 등이 잇따라 DEI 폐기를 발표했고, 자동차 제조사 포드까지 동참했다.
이후 대선 뒤 굴지의 글로벌 대기업까지 DEI 폐기에 동참한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보수단체 행사에서 “‘워크’는 미국을 파괴하는 헛소리”라고 말하는 등 DEI·워크·PC를 공개적으로 비난해왔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도 반DEI 인사들이 대거 포진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비서실 부실장 내정자는 기업의 DEI 정책에 적극 이의를 제기해왔다. JD 밴스 부통령 당선인도 상원의원이던 지난해 여름 연방정부 내 DEI 프로그램을 종료시키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을 외치던 기업들이 트럼프 눈치를 보며 정치적 줄서기에 나섰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저커버그는 DEI 폐기를 사내에 공지하며 “미국에서 DEI를 둘러싼 법적, 정책적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사실상 트럼프 2기 눈치보기임을 시인한 발언이라는 지적이다.
☞DEI 정책과 워크(woke)
DEI 정책: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의 약자다. 학교나 직장, 공공기관에서 인재를 채용하거나 인사를 단행할 때 여성·장애인·유색인종·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을 더 배려해 포용적인 조직을 만들자는 취지다.
워크: 깨어 있다(wake)의 과거분사(woken)를 흑인들이 ‘워크(woke)’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했다. 미국 사회의 인종·성·성정체성 분야에서의 차별에 저항한다는 뜻이지만 최근에는 이런 기조에 대한 조롱과 비난의 의미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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