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스웨터에 연청바지, 빨간 스니커즈 차림을 한 갈색 강아지.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한쪽 입가만 슬쩍 올린 ‘썩소(썩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이 정체불명의 강아지가 최근 전 세계 소셜미디어와 가상화폐 시장을 들썩이고 있다. 일명 ‘칠 가이(Chill Guy·여유 있는 남자)’다.
칠 가이는 미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예술가 필립 뱅크스가 2023년 10월 소셜미디어 X에 처음 공개했던 가상의 캐릭터. 등장 직후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이듬해 8월 무렵부터 틱톡 등을 통해 급속도로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으로 확산했다.
칠 가이 밈은 특유의 잔잔한 연주곡(지아 마가렛의 ‘히노키 우드’)이 깔리는 가운데 갈색 강아지가 등장한 뒤 “Don’t stress it(스트레스 받지 마)” “Life’s messy, bro(인생은 원래 엉망이야, 친구)”라는 등의 문구가 깔리는 식이다. 전반적으로 사회생활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위로를 주는 메시지이나, “오늘 길거리에 넘어진 김에 그 자리에서 숙면했어. 난 칠 가이니까” “내가 그의 집에 불을 지른 이유는, 그저 그가 따뜻하게 지내길 바라는 칠 가이이기 때문이야”라는 등의 엉뚱한 유머를 곁들인 패러디 영상도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밈은 지난해 미 매체 USA투데이가 정한 ‘최고의 밈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급속도로 인기를 얻었다. 그러다 같은 해 11월 동명의 가상화폐까지 등장했다. 일본 지바현 소마을에 살던 시바견(犬) ‘가보스’가 2013년 발행된 가상화폐 ‘도지코인’의 모델이 됐듯, 칠 가이 역시 이른바 ‘밈 코인’이라 불리는 가상화폐 영역에 진출한 것이다.
가상화폐 칠 가이는 발행 당시인 지난해 11월 ‘비트코인 대통령’을 자처하는 남미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서 직접 언급하면서 인지도를 키웠다. 발행 직후 시가총액이 6억달러(약 880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이름과 상반되게 ‘차분하지 않은’ 수익을 올렸다고 타임스오브인디아가 지난 7일 보도했다. 인도 크립토타임스와 영국 테크불리온, 아랍에미리트(UAE) 파이낸스피즈 등 각국의 가상화폐 전문 매체들도 최근 ‘가장 떠오르는 밈 코인’ 중 하나로 칠 가이를 지목했다.
하지만 이후 창작자인 뱅크스가 “내가 만든 캐릭터가 상업용으로 쓰이길 원치 않는다. 이를 통해 수익을 얻고 있는 사람들에게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히며 가격이 급락했다. 현재 가상화폐 칠 가이의 시가총액은 1억달러 남짓으로 떨어진 상태다.
가상화폐 가치 등락과 무관하게, 칠 가이 밈은 최근까지 X와 틱톡, 유튜브 등 플랫폼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사랑받는 밈으로 확산하고 있다. 글로벌 사이다 브랜드 ‘스프라이트’와 미 최대 대학 농구 토너먼트 ‘마치 매드니스’, 미 미식축구 프로 리그 NFL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도 속속 칠 가이가 출연한 패러디 영상이 게시됐다.
국내 소셜미디어에도 진출해 한국어로 된 패러디 영상이 제작되고 있다. 타임스오브인디아는 “칠 가이는 바쁜 세상에서 차분하고 평온함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욕망의 심볼(상징) 같은 존재”라며, “그의 광범위한 매력은 바이럴 캐릭터가 디지털 트렌드 및 마케팅 전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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