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즐겁게 보내고 계신지요? 시선을 우리나라 너머 지구촌으로 돌려보면 올해 설은 조금은 뜻깊습니다. 전쟁과 내전으로 소중한 목숨이 희생되던 중동에서 모처럼 총성이 멈췄기 때문입니다.
재작년 10월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이 지난 19일 휴전에 들어가면서 고향으로 향하는 가자지구 피란민들이 줄을 잇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에 앞서 하마스를 도와 전쟁에 뛰어들었던 레바논 남부의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도 이스라엘과 휴전에 들어갔고요. 시리아에서도 반세기 넘게 국민들을 잔혹하게 탄압하던 알아사드 부자(父子) 독재정권이 축출되면서 국가 재건 작업이 한창입니다.
하지만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에서 평화가 장기간 유지되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는 숨죽이며 중동 상황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4년만에 백악관에 재입성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동 정책의 방향에 따라 중동 정세가 또 한번 출렁일 수 있다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옵니다.
이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중동 정세는 쉽게 따라잡기 힘든 이슈입니다. 중동 뉴스는 방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할 것 같은 생소한 느낌이 자주 드는 것도 사실인데요. 조선일보 국제부가 연휴에 챙겨보면 좋을 중동 관련 드라마와 영화를 추천합니다. 이번 기회에 중동의 역사와 문화를 간접 체험해 본다면, 중동 뉴스도 더욱 쉽고 생생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김지원 텔아비브 특파원의 첫번째 PICK: 파우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이슬람 무장단체 하마스 간 전쟁이 발발한 이후 전세계에서 ‘역주행 신화’를 쓴 드라마가 있습니다. 바로 넷플릭스 드라마 ‘파우다’인데요. 이스라엘군과 하마스·헤즈볼라 간 분쟁을 담은 이 작품은 놀랍게도 전쟁 발발 8년전인 2015년 2월 처음 방영됐습니다. 이스라엘군 소속 특수 요원 ‘도론’이 동료들과 함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서안·가자지구, 유럽 등에서 하마스 대원과 싸우는 내용인데, 미래를 내다본 것 아닌가 싶을정도로 놀라우리만치 작금의 상황과 닮아있습니다.
‘파우다’의 인기 요인 중 하나는 생생한 현장 묘사입니다. 이스라엘에 살며 예루살렘과 서안지구를 종종 방문하는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길을 걷다 ‘여기 파우다에 나온 곳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면 순간 섬찟해질 정도입니다. 작중 중심 인물들의 직업인 특수 요원에 대한 고증도 훌륭한 편입니다. 주인공 ‘도론’을 연기한 배우 리오르 라즈는 실제 IDF(이스라엘방위군) 특공대원 출신으로 제작에도 직접 참여했다고 하네요.
‘파우다’는 총 4개 시즌, 한 시즌당 12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돼있습니다. 연휴 기간 내내 ‘몰아보기’ 하기 딱 좋은 시리즈입니다. 국제부 기자들 다수가 “일단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고 입을 모읍니다. “시즌 5는 대체 언제 나오냐”고 묻는 이들도 여럿입니다. ‘파우다’는 2023년 9월 시즌5 제작이 확정되었지만, 한달 후 실제 전쟁이 터지면서 구상해놓은 내용이 백지화 됐다고 합니다. 최근 현지 매체 보도에 따르면, 새 시즌은 빨라도 2026년 초에 나올 전망입니다.
이번 설 연휴에 ‘파우다’를 정주행 하고, 1년 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팔로잉’하면서 시즌 5를 함께 기다려 보는 것은 어떨까요?
◇김지원 텔아비브 특파원의 두번째 PICK: 그을린 사랑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설명하려면, 헤즈볼라와 레바논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레바논 남부를 장악하고 있는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는 전쟁 발발 이튿날 하마스를 지원하겠다며 이스라엘에 미사일과 드론을 쏟아부었죠. 이에 이스라엘은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와 남부 지역에서 대대적인 공습과 지상전을 개시하면서 수만 명이 죽거나 다치고, 100만명 이상이 집을 떠나 피란을 가야 했습니다. 반세기 이상 외침과 내전으로 고통받았던 레바논에 다시 찾아온 비극입니다. 지난해 11월 말, 60일 간의 휴전 협정을 맺긴 했지만 끝이 다가오면서 연장 여부를 놓고 양측이 다시 으르렁대고 있는 상황입니다.
레바논은 기독교와 수니파·시아파 무슬림 등 공식 종교만 18개에 달하는 나라입니다. 종교 간 내전이 끊이지 않아 대통령·총리·국회의장 등을 각 종교에서 배출하도록 했지만, 이런 분권이 협치가 아닌 정치 마비를 초래했습니다. 영화 ‘그을린 사랑’은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격렬하게 대립하던 1970~1980년대 레바논을 배경으로 한 수작(秀作)입니다. 레바논 태생의 캐나다 극작가 와이디 무아와드가 쓴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듄’ 시리즈로 유명한 드니 빌뇌브가 감독을 맡았죠.
영화는 어머니의 유언장을 받아든 쌍둥이 남매 시몽과 잔의 시점에서 시작합니다. 레바논을 떠나 캐나다에 정착해 남매를 키운 어머니 ‘나왈’은 생을 마감하며 레바논으로 가서 아버지와 또 다른 형제에게 편지를 전하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그들을 찾아나선 딸 ‘잔’은 종교 갈등이 기독교도인 어머니의 인생에 지울 수 없는 그을음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경악스러움과 먹먹함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압도적 폭력에 의해 평범한 이들의 삶이 산산조각나는 비극이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연휴를 맞아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보고, 사유하는 시간을 갖게 해줄 좋은 작품입니다.
◇류재민 기자의 PICK: 테헤란
애플 TV가 만든 이스라엘 드라마 테헤란은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와 이란의 혁명수비대 사이 숨막히는 첩보 전쟁을 그린 영화입니다.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모사드가 이란의 핵시설 타격을 위해 ‘해킹 전문’ 요원을 이란의 수도 테헤란으로 잠입시켜 이란의 방공망을 무력화시키는 작전을 펼치고, 이란의 최정예 군사조직인 혁명수비대가 이를 뒤쫓는 내용입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첩보물의 속도감과 긴장감을 잘 살린 작품으로, 이란과 이스라엘에 대한 배경 지식이 딱히 없어도 누구나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드라마입니다.
드라마의 배경 장소가 테헤란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이란 사회의 모순적인 모습을 조명합니다. 주인공인 모사드 공작원 타마르는 이란계 이스라엘인으로, 1979년 루홀라 호메이니가 집권하면서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신정 국가 체제를 선언한 ‘이란 혁명’을 피해 이스라엘로 넘어온 이란인의 후손으로 등장합니다. 때문에 급격히 보수화되며 개인의 자유가 말살되는 이란의 이슬람 독재를 타파해야 한다는 기조가 전반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체제 유지를 위해 자국민에 가혹한 형벌을 내리는 혁명수비대, 이슬람 신정 통치에 반항하는 젊은 무정부주의자들, 이들에 맞서기 위해 ‘자경단’으로 동원되는 학생 보수단체,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 막대한 부를 누리며 흥청망청하는 그들의 자녀 등 엄격한 독재 체제 하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이란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담아냈습니다. 물론 이런 이란 사회의 모습이 철저한 이스라엘의 시각이라는 점은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이란 사람들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깔고 있습니다. 극중 이란인들은 이스라엘 첩보원인 주인공과 사사건건 대립하지만, 악하게 묘사되는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권위주의 사회라는 이미지가 강한 이란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란 건 우리와 별다른 게 없구나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란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많이 갖고 있었던 저는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를 보면서 테헤란을 꼭 한 번 방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예전에 이란통으로 활약했던 한 외교계 원로를 만나 이란에 대한 칭찬을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정말 오래된 역사와 유산을 가진 문명국이고, 가보면 사람들도 키도 크고 너무 멋지고 예쁘다”고 거듭 말씀하셨을 때는 잘 와닿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하나를 보고선 생각이 180도 바뀐 걸 보면, 이런 게 콘텐츠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서보범 기자의 첫번째 PICK: 사마에게
연휴에 가족과 함께 보기 좋은 ‘휴머니즘’ 영화 한 편을 소개합니다. 2011년부터 13년간 이어진 시리아 내전 한가운데서 딸을 지키고자 하는 한 어머니의 강렬한 모성애를 담은 다큐 영화 ‘사마에게’입니다. 최근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축출되며 시리아 내전이 차츰 정리될 기미를 보이고 있는데요. 시리아 내전이 얼마나 큰 비극이었는지를 이 영화만큼 잘 보여주는 작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마에게’는 이란과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지원을 받는 알아사드 독재 정권과 시리아 북부 알레포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반군이 치열하게 내전을 벌이는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시리아인 여성 시민 기자 와드 알 카팁이 이곳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5년간의 일을 촬영해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인데요. 와드는 알레포 대학 재학 중 아사드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아랍의 봄’ 시위에 합류하며 시위 초기의 낙관적인 분위기와 희망을 담았고, 이후 내전이 진행되며 무차별한 폭격이 알레포를 망가뜨리는 장면을 카메라를 담으며 그 참상을 알립니다.
감독은 사랑하는 도시의 자유를 위해 싸우던 중 뜻을 함께하는 친구 ‘함자’를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고, 전쟁 속에서 그들의 첫째 딸 ‘사마’가 태어나는 장면을 동시에 촬영했습니다. 그녀와 남편이 살아남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부모가 어떤 사람이고, 그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 지 알리기 위해 촬영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맑고 어여쁜 아기의 모습과 끔찍한 전쟁의 참상이 대비돼 그 비극이 더욱 절절하게 와닿습니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게 한 엄마를 용서해 줄래?”라는 그녀의 말이 제 가슴을 후벼팠습니다.
◇서보범 기자의 두번째 PICK: 알라와비 여고
잔혹하면서도 통쾌한, 그러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남겼던 학교폭력 복수극 ‘더 글로리’ 보셨나요? 중동에도 비슷한 ‘하이틴 스릴러’가 있습니다. 요르단의 명문 여학교를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학원물 ‘알리와비 여고’ 시리즈인데요. 세련된 연출과 탁월한 영상미 때문에 쉽게 손이 가지만, 단순히 풋풋한 청춘의 모습을 담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학교 폭력으로 시작된 복수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이 드라마에는 중동 아랍 사회가 겪고 있는 여성 차별과 명예 살인, 계급 갈등, 학교 폭력 등의 어두운 단면이 녹아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의 반전 결말은 시청자들에게 잊지 못할 충격을 줍니다.
요르단은 친미 왕정이 굳건해 치안이 안정되고 상대적으로 세속적인 분위기의 나라로 평가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 개봉 당시 ‘외설적이다’는 평가를 받으며 요르단 사회에서 큰 파장도 일으켰는데요. 특히 이슬람 문화가 갖고 있는 모순점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 때문에 큰 논란이 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르단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단순한 학원물이 아니라 사회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갈등과 문제들을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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