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칭화대 강기(수학 등 우수자) 전형에 응시한 수험생들이 면접을 치르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샤오훙수

“베이징대 인공지능(AI)학과 학생들은 ‘출신 성분’이 다르다.” 베이징대 이공계 학과를 졸업한 중국의 20대 직장인 A씨는 “중국 대학은 정예 AI 인력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특별 전형을 통해 인재를 뽑아 최고 수준의 교수를 붙여 가르친다. 최근엔 미국에 있다가 돌아온 ‘애국 귀국’ 교수들까지 이들의 교육에 투입되는 중”이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 ‘특별 전형’이란 2020년 시작된 이공계 인재 특화 선발 프로그램 ‘강기(强基·과학 우수자 선발 강화) 전형’을 뜻한다.

그래픽=김성규

저장대를 졸업한 중국 ‘토종’ 청년 창업가 량원펑(40)이 세운 회사 ‘딥시크’가 미국의 최첨단 AI에 버금가는 성능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후 AI 인재 육성에 매진하는 중국 대학의 이공계 교육이 주목받고 있다. 중국 대학의 ‘AI 대군(大軍)’ 양성은 크게 두 줄기로 진행된다. 대학에 AI 학과를 대거 만들어 관련 인재를 동시다발적으로 길러내는 ‘인해전술’ 전략과 이들을 이끌 고급 인력을 선발해 집중적으로 교육하는 ‘정예 육성’을 병행한다. 대학에서의 집중적 AI 인재 육성에 정부의 전폭적 창업 지원이 더해져 중국엔 이미 AI 기업 38만곳이 세계를 상대로 치열하게 ‘중국산(産) AI’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2018년 중국 교육부가 ‘대학 AI 창신(創新·새것을 만듦) 행동 계획’을 발표한 이후 지난해까지 중국 전역의 대학엔 AI 학과가 535곳 설치됐다. 지난해 기준 AI 전공으로 입학한 학부생은 약 4만3000명에 달한다.

◇베이징대 투링반·칭화대 야오반… 천재 뽑아 석학이 교육

중국 교육부가 ‘AI·반도체 정예’ 육성 등을 취지로 만든 강기 전형은 기초과학[基] 능력자의 대학 선발을 강화[强]한다는 뜻이다. 매년 4월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지원자를 받는다. 6월 가오카오(대입 시험) 성적이 나오면 이 중 20분의 1 정도가 1차 합격을 하고, 이들을 모아 대학의 넓은 강당이나 체육관에서 ‘과거(科擧)’를 보듯, 다방면의 시험을 거치게 해 엘리트 입학생을 추가로 가려낸다. 중국 상위 39곳의 명문대가 자체적으로 실시한다. 난도 높은 수학·물리·화학 필기시험과 두 차례의 면접, 체력 테스트까지 거쳐야 한다. 베이징대의 경우 지난해 약 3000명이 이 시험을 봤고 890명이 선발됐다. 전체 학부 신입생의 21% 정도다.

이렇게 명문대에 입학한 ‘천재’들은 이들을 위해 만든 별도의 반(班)에 들어가 최정예 AI 인재로 육성된다. 베이징대의 투링반, 칭화대의 야오·즈반이 대표적이다. 이 특수반은 이름부터가 AI 인재를 훈련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투링(圖靈)반은 AI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의 성(姓)을 중국식으로 음차했고, ‘야오반’과 ‘즈반’은 컴퓨터 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을 받은 야오치즈(姚期智) 교수의 성명에서 이름을 땄다. 홍콩 대학 출신인 베이징의 AI 연구원 Y씨는 4일 “AI 기업들 사이에선 투링반·야오반 출신은 무조건 뽑으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라며 “학부에서 철저히 이론과 실전을 가르쳐 이들이 웬만한 미국 박사보다 낫다는 평가가 있다”고 했다.

엘리트 AI 인재라는 ‘뼈대’에 더해, 중국은 대학의 AI 학과를 빠른 속도로 늘리는 ‘AI 양병(養兵)’ 전략도 추진 중이다. 중국 교육부는 2023년 AI를 겨냥한 학과 개혁 방안을 발표한 후 이공계 학과 증원을 목표로 20%가량의 전공을 조정했다. 그 결과 2017년 이전엔 없던 ‘AI 학과’가 베이징대·중국과학기술대를 포함해 500곳 넘는 대학에 신설돼 운영되고 있다.

중국 대학의 AI 교육은 ‘책상머리’ 이론 교육에 그치지 않는다. 졸업 후 즉각 투입돼 중국의 AI 굴기(崛起)에 매진할 실전 인재를 만들어낸다. 매년 400명 정도의 신입생을 뽑는 중국의 최고 기술 대학인 중국과학원대학은 2019년부터 ‘일생일심(一生一芯·학생 한 명당 반도체 한 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3~7개월 단기 집중 교육을 통해 전공을 불문하고 모든 학생이 반도체 설계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게 목표다. AI에 특화된 고성능 반도체는 현재 미국 엔비디아가 사실상 독점 생산하고 있다. 중국은 미 정부의 제재로 고성능 AI 반도체를 수입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중국산 반도체 개발로 돌파하려 하고 있는데, 이런 계획의 토대가 대학에서부터 다져지는 셈이다.

일러스트=박상훈

미·중 갈등 여파와 중국의 ‘기술 돌파’ 전략이 맞물리며 중국계 과학자들의 귀환이 늘어난 것도 중국 대학의 AI 교육에 호재가 됐다. 지난해 스탠퍼드대 중국 경제·기관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을 기반으로 연구 활동을 해온 중국 과학자들의 귀국 비율은 2010년 48%에서 2021년 67%로 늘었고 최근에는 75%로 증가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대학으로 스며들면서 중국 대학의 연구 역량도 갑자기 도약하는 모습이다. 세계 우수 학술지에 게재된 과학기술 분야 논문의 영향력을 점수화한 ‘네이처 인덱스’(2023년 11월~2024년 10월 연구 산출량 기준)에서 상위 10위에 든 대학은 하버드대(1위)를 빼고는 모두 중국 대학(대만 한 곳 포함)이었다. 11위를 차지한 대학은 중국의 지방대인 쓰촨대로 약 2년 사이 미국 동·서부의 명문대인 매사추세츠공대(MIT·13위)·스탠퍼드대(12위)를 차례로 순위에서 제쳐 충격을 줬다.

중국 선전에서 AI 기업을 만든 바링허우(八零后·1980년대생) 창업자 허씨는 “지금 중국에선 AI 기술만 접목해 창업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 어린이부터 회사 중진까지 AI 공부에 정진하고 있다”면서 “특히 지금 중국 이공계 인재들은 화웨이(반도체)·딥시크(AI) 등의 잇단 성공으로 흥분도(興奮度)가 매우 높은 상황”이라고 했다. 베이징의 한 정책 연구소 관계자는 “중국은 올림픽에 출전하는 엘리트 선수를 키우듯이 이공계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에서는 중국 대학 교육의 ‘AI 집중’에 대한 불만도 나오고 있다. 중국의 일자리 취업 중개 플랫폼 관계자는 “고급 이공계 인력이 늘어나고 대부분 기업이 AI 분야를 강화하려 하다 보니 이제 중국에서 금융사 같은 비(非)테크계 회사에 들어가려 해도 첨단 과학 관련 학위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다른 전공자들이 느끼는 박탈감이 분명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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