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미·러 고위급 협상이 18일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렸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3년 만에 종전 논의가 본격 막이 오른 것이다.
미국 측 협상 대표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이날 러시아 측과 회담을 마치고 “미국·러시아 양국이 ‘우크라 분쟁 종식’을 위한 고위 협상팀을 신속 구성키로 했다”고 밝히면서 “목표는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해결책에 모든 관련 당사자가 동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루비오 장관은 또 러시아 주재 미 대사관 인력을 복원하는 등 미·러의 미래 협력의 기초를 다지기로 했다고 밝혔다.
종전 협상이 미국과 러시아 주도로 개시되고,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재설정될 조짐을 보이면서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반발도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그동안의 전쟁 지원 대가로 5000억달러(약 722조원)에 달하는 재건 이익 공유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정부가 교역뿐 아니라 전쟁에서조차 철저한 경제 논리로 우방국을 압박하며 ‘청구서’를 들이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이번 리야드 회담에서 소외된 우크라이나의 반발을 고려한 듯, “우크라이나도 함께 협상하게 될 것”이라고 달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태미 브루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실제 평화를 위한 협상은 우크라이나와 함께 이뤄질 것”이라고 했고, 회담 후 루비오 장관도 “모두가 동의하는 해결책”을 언급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미·러 양자 협상’임을 분명히 하며 양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 담당 보좌관은 리야드 공항에 도착한 직후 “미국 측과 협상하러 왔다”며 “리야드에서 3자 간 회담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러시아 측 협상 대표단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 장관이 이끌고 있다. 이날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2022년 합병한 도네츠크·루한스크·헤르손·자포리자 지역은 취소 불가능한 러시아 영토”라며 협상의 전제 조건을 내걸었다. 우크라이나 점령지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17일 영국 텔레그래프는 트럼프 정부가 지난주 우크라이나 정부에 ‘재건 투자 기금’ 설립을 제안하면서 “지금까지 미국에서 받은 (군사·경제적) 지원의 대가로 5000억달러를 갚으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텔레그래프는 이 같은 내용의 ‘재건 투자 기금’ 협정 초안을 입수했다고 보도하면서 “이는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영원히 미국의 경제적 식민지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재건 투자 기금’ 초안에는 미국이 우크라이나가 자원 채굴로 얻는 수입의 50%를 갖고, 수출 가능한 광물에 대해 우선 매수권을 갖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우크라이나 자원 경제에 대한 전면적 통제권을 확보함으로써, 전쟁 지원의 대가를 취하겠다는 의도다. 또 이번 미·러 주도 종전 협상 결과를 수용하도록 우크라이나를 압박할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종전 협상에서 소외된 우크라이나와 유럽 주요국들은 반발하며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UAE), 튀르키예를 순방하며 지지 확보에 나섰다. 19일엔 사우디를 방문해 미·러 협상 결과를 직접 확인할 예정이다. 젤렌스키는 이날 독일 ARD방송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보장하지 않은 채 미국이 일방적으로 러시아와 휴전을 추진한다면 우크라이나는 ‘제2의 아프가니스탄’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20년 바이든 정부는 무장 단체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뒤 이듬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완전 철수시켰지만, 탈레반은 안보 공백을 이용해 아프간 정부를 무너뜨린 뒤 권력을 장악해 시민들을 폭압했다. 젤렌스키의 발언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라는 강력한 안보 장치 없이 종전 선언을 할 경우, 러시아가 또다시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침공할 수 있다는 취지다.
유럽 주요국 정상들도 이날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주도로 긴급 회동했다.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덴마크, 폴란드 등의 정상과 EU 집행위원장, 나토 사무총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최대 3만명 규모의 유럽 평화유지군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평화유지군은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안보를 지킬 수 있는 최후의 카드로 인식된다. 그러나 프랑스·영국과 달리, 독일·폴란드 등이 반대하고 있어 합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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