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배제한 채 러시아와 단독으로 종전 협상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8일(현지 시각) 사저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선거가 치러지지 않았고 사실상 계엄령이 선포된 상태”라며 “말하기 싫지만, 우크라이나 지도자는 지지율이 4%에 불과하다. 나라도 산산조각이 났다”고 했다.
이어 우크라이나가 자신들이 협상에서 배제됐다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그들은 지난 3년 동안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이제 와서 초대받지 못했다고 불평할 필요가 없다”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결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협상 테이블에 앉고 싶다면 먼저 오랫동안 선거가 없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평화 협정 체결을 위해 우크라이나의 대선을 원한다는 얘기가 있다’는 질의에는 “이는 러시아가 제기한 것만이 아니라 나와 다른 나라들도 하는 얘기”라고 답했다. 우크라이나가 대선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에 우회적으로 동의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앞서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우크라이나 종전 방안을 놓고 열린 미·러 장관급 회담이 열렸다. 다만 이 회담에는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물론,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나토의 유럽 국가들은 배제됐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미·러 회담에 초대받지 못했으며, 이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서야 알게 됐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또 이번 회담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당초 19일로 예정됐던 사우디아라비아 방문도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보도되자, 우크라이나 언론에서 반박 보도가 나왔다. 특히 문제가 된 건 ‘젤렌스키 대통령 지지율이 4%에 불과하다’는 언급이었다.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키이우국제사회학연구소의 최신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작년 12월 우크라이나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인터뷰 여론조사에서 현재 국정 지지율은 52%로, 트럼프가 말한 4%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젤렌스키의 지지율은 앞선 조사들에서 2022년 5월 90%, 2023년 12월 77%, 2024년 5월과 9월 각각 59%로 하락 추세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도시가 ‘산산조각 났다’는 식으로 우크라이나 상황을 과장된 표현으로 묘사했다”며 “트럼프는 지난 3년 동안 우크라이나를 매일 폭격한 러시아를 비난하는 대신, 일부 책임을 젤렌스키 정부에 돌렸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