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쿠르스크로 파병됐다가 우크라이나군에 포로로 붙잡힌 북한군 리모(26)씨의 인터뷰가 공개된 후 북한군이 처한 인간 이하의 참혹한 현실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대부분의 병사가 한국의 중·고등학생 정도인 10대 중·후반의 어린 나이에 입대해 가족과 단절된 채 장기간 복무하고, 극한 환경에서 비(非)인간적 노동에 노출됐다는 사실이 본지가 처음으로 인터뷰한 북한군 포로의 증언을 통해 다시 확인된 것이다.
북한군 저격수 리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미 복무 10년 차이며 제대를 앞두고 러시아로 파병됐다고 했다. 16세에 입대해 의무 복무 기간인 10년을 채우느라 20대 중반까지의 삶을 전부 군에서 보낸 것이다. 리씨는 “부모하고 전화상으로만 이야기를 했고 한 번도 못 만났다”고 밝혔다. 황해남도 신천에 있는 리씨의 부대에서 평양의 고향집까지는 불과 100여㎞ 떨어져 있었지만 면회나 외출이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북한군은 외출이나 휴가를 부모가 사망하는 등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 극히 제한적으로만 허가한다고 알려졌다. 북한군 출신 한 탈북민은 “북한은 돈이 많거나 힘이 센 부모들이나 군 복무 기간 중 자식을 면회할 수 있다”며 “대부분은 편지와 전화를 통해 가족들과 안부를 가끔 주고받는 것 정도만 가능하다”고 했다. 리모씨에 이어 본지가 인터뷰한 또 다른 러시아 파병 북한군 백모(21)씨 또한 입대한 지 4년 동안 홀어머니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어머니가 자신의 파병 사실조차 모른다고 밝혔다.
리씨의 인터뷰에선 북한군이 국방뿐 아니라 국가의 여러 사업에도 강제로 동원돼 노예와 다름없이 일해야 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리씨는 본지에 자신이 속했던 ‘폭풍군단’이 “전투력이 높아 공사, 전투 임무 수행 등에 앞장섰다. 삼지연 건설에도 동원됐다“고 했다. 이는 북한 김정은이 2018~2021년 백두산 인근 량강도에서 벌인 대규모 ‘선전 도시’ 건설 사업을 가리킨다. 이 지역은 겨울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추위로 악명이 높은데 김정은이 병사들을 대거 동원해 체제 선전을 위한 공사에 투입했다는 사실이 리씨의 인터뷰로 확인됐다. 리씨는 “쿠르스크와는 추위가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혹한의 겨울에 삼지연 공사에 투입돼 “곡괭이로 종일 요만한 돌망구(돌멩이) 하나씩을 캐느라 손이 얼어붙었다”고 했다.
공사 현장에선 제대로 된 식사조차 지급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몇 년 전 탈북한 북한군 출신 탈북민은 “군 사정이 너무 열악하다 보니 먹을 것을 구하려고 무기를 든 군인들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살인·강도 등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잦은 상황”이라며 “이런 범죄를 저지르면 사형에 처하겠다는 북한 당국의 포고문까지 나붙은 적이 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쯤부터 러시아에 파병되는 북한군들의 피해는 계속 불어나는 중이다. 리씨에 따르면 북한군은 해외에서 “유학 훈련”을 한다는 거짓말을 듣고 러시아로 이송됐고, 상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무더기로 목숨을 잃고 있다. 약 1만2000명이 파병됐다고 알려진 북한군 중 3분의 1 정도인 약 4000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고 알려졌고, 북한군이 추가 파병을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다만 미국과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종전 협상을 벌이는 상황이어서 북한군 추가 파병은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는 말도 나온다.
이와 관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8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뭔가를 하고 싶어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아마도 이달 말 만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많은 수의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이 사망하고 있다면서 러시아를 위해 참전한 “북한군도 많은 수가 사망했다. 그들은 싸우기 위해 왔지만, 많은 수가 죽임을 당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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