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2022년 2월 시작된 전쟁이 24일로 3년을 맞았다. 이 전쟁을 끝내겠다며 협상을 벌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사 지원에 대한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광물 자원 수익 등을 통해 조성할 5000억달러(약 719조원) 규모의 기금을 만드는 새 협정안을 제안했다고 뉴욕타임스가 22일 보도했다. 트럼프는 이날 메릴랜드주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연례 행사에 참석해 “우리가 낸 모든 돈에 대한 대가를 우크라이나로부터 받으려 한다. (광물 협정) 체결이 매우 임박했다”고 했다.

그래픽=이진영

NYT는 “협정이 체결될 경우 조성된 기금은 재건에 활용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를 통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천연자원, 기반 시설 등에서 얻은 수익으로 조성할 기금을 우크라이나의 장기적인 재건 및 개발에 초점을 맞춰 쓴다는 내용을 협정안에 담았다. 기금 관리 권한은 미국이 가질 예정”이라고 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자원에 대한 지분을 요구했다고 알려진 후 ‘제국주의적 기조’라는 논란이 일었는데, 자원 수익금을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위해 쓰겠다고 설명한 것이다. 베센트는 아울러 “우크라이나 방위에 기여하지 않은 국가는 (이 기금을 통한) 투자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한다”며 미국이 재건 사업비 배분을 총괄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트럼프 정부는 앞서 지난 12일 전쟁 지원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있는 희토류 광물의 지분 50%를 요구하는 협정안을 제안했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래 안보 보장에 대한 내용이 없다”며 거절했었다. CNN은 협상에 참가 중인 우크라이나 관리들을 인용해 수정된 협정안에도 미군 주둔 등 미래 안보와 관련한 약속이 없어 우크라이나가 이를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고 23일 보도했다.

◇美가 재건 자금 배분… “우크라 방위에 기여한 나라만 참여 기회”

NYT가 입수해 보도한 새 광물 협정안엔 우크라이나는 석유·가스·광물 등 천연자원의 수익과 항만 등 국가 기반 시설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50%를 미국이 통제하는 기금에 납입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낸 돈이 5000억달러에 미칠 때까지 납부는 계속된다. ‘5000억달러’는 트럼프가 그간 러시아 침공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방위한 대가라며 요구해온 금액이다.

그래픽=이진영

NYT는 “5000억달러는 지난해 11억달러였던 우크라이나의 자원 수익보다 훨씬 많고 미국이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지원금의 네 배 수준이 넘는 큰 규모”라고 전했다. 협정안엔 아울러 현재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우크라이나가 수복할 경우 해당 지역에서 발생하는 자원 수익의 66%를 기금에 내야 한다는 조건도 포함됐다고 알려졌다. 러시아는 현재 희토류 등 자원이 풍부한 돈바스 지역을 포함해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20%를 점령하고 있다.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21일 우크라이나의 부담이 큰 데다 구체적인 미국의 안보 보장 약속이 빠졌다는 지적에 “미국과 맺는 경제 파트너십보다 더 좋은 일이 있느냐. 협상이 곧 타결될 전망”이라고 했다.

베센트 재무장관은 FT 기고문에서 “미국은 (광물 등) 우크라이나의 물리적 자산에 대한 소유권은 가져가지 않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트럼프가 지난 10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수천억 달러를 지원했고 그 대가로 5000억달러에 달하는 우크라이나의 희토류를 가지길 원한다”고 하는 등 광물을 미국이 직접 가져다가 쓰겠다는 듯한 발언을 해왔는데, 자원의 직접 소유는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것이다.

광물 협정과 관련해 최근 설전(舌戰)을 벌여온 트럼프와 젤렌스키 사이에 이견이 좁혀지고 우크라이나 재건에 쓰일 기금이 조성되기 시작할 경우 종전(終戰)과 동시에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이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김윤경 이화여대 교수는 “재건 비용을 충당한다는 기금의 목적이 뚜렷하다면 우크라이나는 고용을 창출하고 미국은 전쟁 비용을 회수할 수 있어 양국 모두 이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온 한국의 재건 사업 참여도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미국과 러시아가 종전 협상을 통해 영토 문제 등 큰 원칙에서만 합의를 이루고 나면, 한국 산업계도 우크라이나 재건 시장에 진입하는 데 높은 기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건설사 등은 2023년 정부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참여를 모색하기 위해 파견한 재건 협력단에 참여해 일찌감치 현지 진출을 타진해왔다. 당시 현대건설이 우크라이나 보리스필 국제공항공사와 공항 재건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고, 삼성물산은 우크라이나 리비우시(市)와 스마트시티 개발 협력 MOU를 체결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크리비리흐시와 건축 사업 및 비료·화학 사업 협력을 위한 MOU를 맺었다.

재건 과정에 필수적인 건설 장비 및 기반 시설 관련 기업도 사업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 중이다. HD현대그룹의 건설기계 중간 지주사인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지난해 9월 키이우에 지사를 설립하고 우크라이나 정부 측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 폭격으로 가동이 중단된 미콜라이우항(港) 인근에 곡물 터미널을 보유하고 있는 포스코인터내셔널은 가동 정상화에 대비해 현지 영농 기업을 접촉하며 종전에 대비한 추가 사업 기회를 노리는 중이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종전 후 미국의 안보 약속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협정 타결이 쉽지 않으리라는 관점도 있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단장은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이 장기적으로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고 가는 자원 협정안은 (트럼프가 밀어붙이는) 조기 종전을 위한 단기적 압박 카드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도 “젤렌스키는 미국의 안전 보장을 전제로 한 ‘한국식 모델’을 원한다. 미국 측의 지금 제안대로 협상이 타결된다면 아무런 ‘방호막’ 없이 전쟁 비용까지 토해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봉착하게 되는 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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