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총선에서 중도우파 기독교민주당(CDU)과 자매 정당 기독교사회당(CSU) 연합(기민·기사 연합)이 승리하면서 사실상 총리 자리를 예약한 프리드리히 메르츠(70) 기민당 대표에게 눈길이 쏠리고 있다. 메르츠 대표는 지난해 9월 일찌감치 기민·기사 연합의 총리 후보로 낙점됐다.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 주도 ‘신호등’ 연립정부에 대한 심판 여론이 일면서 차기 총리감으로 줄곧 거론돼 왔다.
메르츠는 법률가 출신으로 1980년대에 정계에 입문했다. 역시 기민당 대표를 지낸 앙겔라 메르켈(71) 전 총리의 라이벌이자 억만장자로 유명하다. 메르켈이 환경·복지·이민·여성 및 성소수자 정책에서 중도좌파의 의제를 적극 수용한 반면, 메르츠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옹호하고 반공 노선을 분명히 하는 등 전통적 보수주의자의 면모를 보였다. 유럽연합(EU)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중시하는 국제주의자이기도 하다.
메르츠는 2002년 메르켈에게 원내대표 자리를 내준 뒤 점점 입지가 좁아졌다. 결국 2009년 총선 출마를 포기하면서 사실상 정계에서 물러났다. 이후 로펌에서 기업 전문 변호사로 일하면서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독일 법인 등 10여 기업의 이사회 임원을 맡아 막대한 부를 쌓았다. 정치권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그를 독일 대기업들이 줄을 서서 모셔갔다.
메르츠는 ‘통합’을 내세운 메르켈의 중도좌파적 정책이 당의 보수적 정체성을 파괴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2015년 도입된 대규모 난민 수용 정책을 “비현실적으로 무모하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2018년 메르켈이 총리 연임을 포기하고 기민당 대표에서도 물러나겠다고 발표하자, 바로 당 지도부 선거에 출마하며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2021년 11월 기민당 대표 선거에서 ‘메르켈 시대와의 결별’을 내세워 당선됐다. 이후 당내 정통 보수 세력을 결집하고 보수 색채가 분명한 정책을 내세웠다. 지난달 난민의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지자 “총리가 되면 첫날 모든 국경을 통제하고 유효한 서류 없는 이민자의 입국을 금지하겠다”며 초강경 대책을 예고한 것이 대표적이다.
메르츠는 경제 분야에서도 재정 건전성 강화와 감세 등 전통적 우파 정책을 펼칠 전망이다. 또 독일 경제의 허리를 이루는 제조업 중소·중견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안정적이고 저렴한 에너지 공급원인 원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메르켈이 10여 년간 펼쳤던 이민 확대와 탈원전 정책이 완전히 뒤집힐 공산이 커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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