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 참치잡이 원양어선에 탄 북한 선원이 머리를 다쳐 동료들이 치료하는 모습. 영국에 본부를 둔 환경단체 ‘환경정의재단’이 25일 발표한 보고서에 실린 사진이다. 환경정의재단은 북한 노동자들이 중국 원양어선에서 ‘노예 노동’에 가까운 착취를 당한다고 전했다./환경정의재단

외화벌이를 위해 중국 원양어선으로 보내진 북한 선원들이 노예처럼 착취당했다는 증언이 담긴 영국 환경 단체의 보고서가 나왔다. 보고서에 소개된 사례 중에는 북한 선원이 10년 동안 배에서 강제 노동한 경우, 8년 동안 뭍을 밟지 못하고 배에만 머문 경우도 있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외화벌이를 위해 자국민을 인신매매하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환경정의재단(EJF)’은 지난 22일 북한 선원들의 강제 노동 실태를 담은 ‘바다에 갇힌 사람들: 중국 인도양 참치 어선에서의 북한 강제 노동 폭로’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2017~2023년 중국의 참치잡이 원양어선에서 일한 19명의 인도네시아·필리핀 선원들이 동승한 북한 선원들에 대해 증언한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EJF는 “중국은 10만명에 이르는 북한 해외 노동자들이 향하는 주요 목적지로, (중국의) 원양어선에서 북한 노동이 공개적으로 문서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선원들은 소말리아나 모리셔스, 호주 인근에서 작업을 하는 중국의 원양어선은 정기적으로 입항하지만, 북한 선원들은 입항하지 않고 다른 배에 옮겨 타는 방식으로 땅을 밟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이들이 잠시도 육지로 들어올 수 없었던 이유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017년 12월 북한 핵 개발에 대한 제재로 모든 회원국들에 북한 노동자 고용을 금지하고 기존 북한 노동자들도 본국으로 송환하도록 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선주들은 북한 선원들을 배 안에 가둬두고 뭍은 밟지도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22년 12월에는 모리셔스에 정박한 중국 어선의 선장과 북한 선원 6명이 체포된 이후, 단속을 피하기 위해 북한 선원들을 감금하는 일이 더 잦아졌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북한 선원들은 휴대전화 소지도 금지되기 때문에 몇 년간 가족들과 연락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2022년 말부터 지난해 6월까지 6명의 북한 선원과 함께 일했다는 인도네시아 선원은 “북한 선원 중 한 명은 7년간 아내와 단 한 번도 연락하지 못했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8년간 줄곧 배에 머물며 땅을 밟지 못한 북한 선원과 함께 일한 적이 있다는 증언도 보고서에 담겼다. 북한 선원들은 이처럼 철저히 인권을 무시당하면서도 서로 감시하고 사상 교육에 골몰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동영상으로 김정은의 연설을 보기도 하고, 북한 선원들끼리 정자세로 국기를 게양한 채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중국 어선 선원들은 대부분 여권을 빼앗긴 채 하루에 5~6시간만 잠을 자면서 일을 하지만, 북한 선원은 그중에서도 경력이 길고 가장 숙련됐다는 게 동료들의 전언이었다. 인도네시아 선원은 한 달에 약 330달러(약 47만원)를 받았지만, 북한 선원들의 월급은 바로 북한 정부로 송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일부 어선은 북한 선원에게 월급에서 50달러(약 7만원)를 떼어주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티브 트렌트 EFJ 대표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불법 조업과 인권 침해는 중국의 원양어선에서 거의 예외 없이 발견할 수 있지만, 북한 선원들이 장기간 시달려야 했던 강제 노동은 EJF가 밝혀낸 심각한 위법 행위 중에서도 특히 심각한 사례”라고 했다. 지난해 유엔 전문가 패널은 유엔 안보리 제재에도 불구하고 10만명 이상의 북한인이 여전히 40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EJF는 “2017~2023년 인도양 남서부에서 조업하는 중국 선박 71척에서 177건의 불법 조업과 인권 침해 등이 발생한 것으로 의심되거나 확인됐다”고 했다.

중국은 EJF 보고서에 대한 언급을 피하면서, 원양어선 활동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했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브리핑에서 보고서에 나온 내용은 유엔 제재 위반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질문에 대해 “구체적 상황은 모르지만, 중국은 원칙적으로 원양어업 활동에 현지 법규와 국제법 관련 규정을 준수하라고 요구한다”며 “중국과 조선(북한)의 관련 협력은 모두 국제법의 틀에 부합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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