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우크라 핵 포기’ 담긴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서명 - 1994년 12월 5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회의에서 보리스 옐친(왼쪽부터) 러시아 대통령,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레오니트 쿠치마 우크라이나 대통령, 존 메이저 영국 총리가 안전 보장 각서에 서명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여섯 차례나 “당신에게는 (내밀) 카드가 없다(You don’t have the cards)”고 면박 준 장면은 우크라이나가 처한 안보 현실을 뼈저리게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련 해체로 1991년 독립국이 됐지만 30여 년 동안 강대국의 안보 약속만 믿고 있다가 국제사회 ‘힘의 질서’에 휘둘려 이 같은 상황을 맞게 됐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독립 이후 탈(脫)냉전과 동서 화해, 미국 일극 체제(팍스 아메리카나)의 평화 무드 속에 자국 안보를 강대국들의 ‘외교적 보장’에 의존했다. 친(親)서방과 친러시아로 갈라진 정치인들과 올리가르히(신흥 재벌)들이 권력 다툼을 벌이는 과정에서 국내 정치는 분열과 부정·부패로 혼탁해졌고 국력은 약해졌다.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패착으로 독립 초기 강대국들의 회유에 핵보유국의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은 것이 꼽힌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셋째로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였다. 중거리 핵미사일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에 탑재 가능한 전략 핵탄두 수가 1700개 이상이었고, 중·단거리 미사일과 전략 폭격기용 전술 핵무기도 최소 2000개 이상으로 평가됐다. 유럽 최대 규모의 원전 시설에 기반한 자체 핵무기 제조창까지 갖고 있었다.

그래픽=백형선

그러나 당시 미국을 비롯한 기존 핵보유국들은 우크라이나가 이렇게 많은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다. 특히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와 구소련 국가들에 경제·사회적 혼란이 가중되고, 이로 인해 일부 핵무기가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갈 가능성마저 제기됐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등 인접국들이 보유한 핵무기가 자국을 겨냥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당시 심각한 경제난에 빠진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도 핵무기는 막대한 관리비만 들어가는 ‘고철’과 다름없었다. 우크라이나는 결국 1994년 카자흐스탄·벨라루스와 함께 소련 시절 배치된 모든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겨 폐기하는 내용의 ‘부다페스트 양해각서(memorandum)’를 맺었다. 이 각서에 공동 서명한 핵보유국은 러시아·미국·영국이다. 각서 내용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대신 핵보유국들에 자국 영토와 안전 보장을 약속받았다. 우크라이나는 당초 구속력이 큰 ‘조약’을 요구했지만 강대국들이 부담을 느끼면서 양해각서 수준으로 격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12월 우크라이나 바쿨렌추크에 있는 옛 소련 로켓 기지에서 군인들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폐기하기 위해 옮기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 각서는 나중에 공허한 말잔치였음이 드러났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은 2014년 2월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침공해 합병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영토 주권을 존중하겠다’는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하자 미국과 영국은 서방 동맹국과 손잡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와 G8(8국) 퇴출로 대응했지만, 정작 군사적 개입은 하지 않았다.

흑해의 요충지인 크림반도를 빼앗은 러시아는 더욱 노골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손을 뻗었다. 두 달 뒤 도네츠크주(州)와 루한스크주 등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 군사 지원을 받은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대거 발호해 내전이 격화했고, 도네츠크·루한스크인민공화국이라고 불리는 친러 괴뢰 정권이 수립됐다.

러시아의 배후 조종이 분명한 상황이었지만 미국은 손을 놨다. 프랑스와 독일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테이블에 앉히고 돈바스 지역의 휴전과 외국 군대 및 무기 철수, 자치권 인정, 우크라이나의 국경 통제권 등을 약속한 ‘민스크 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노골적으로 반군 편을 들면서 이듬해 맺은 추가 협정까지 무력화됐고, 이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이어졌다.

그래픽=백형선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집단 안보에 의지하려는 우크라이나의 노력이 유럽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휘말려 좌초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는 2008년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열린 나토 정상 회의를 통해 나토 가입 직전까지 갔다.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동맹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나토 동맹의 울타리에 들어가 러시아의 위협에서 벗어나려 한 것이다.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적극 지지하면서 실현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반대하고 나섰다.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등 푸틴 정권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던 탓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우크라이나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다시금 나토 가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번엔 러시아와 직접 종전 협상에 나선 트럼프 미 행정부의 반대로 좌절을 겪고 있다.

젤렌스키가 트럼프와 J D 밴스 부통령과 동석한 자리에서 “무슨 외교를 말하는 것이냐. 푸틴은 지금까지 25번이나 자신의 약속을 어겼다”고 말하면서 격렬한 말싸움으로 이어졌고, 젤렌스키는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하며 백악관을 나와야 했다. “무슨 외교를 말하는 거냐”는 젤렌스키의 말에는 30년 넘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약속을 번번이 어기며 영토를 침탈했고, 서방은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했다는 울분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한 트럼프의 답변은 “고마운 줄이나 알라. 당신에겐 카드가 없다”는 면박이었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1994년 12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소련 해체로 독립한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벨라루스와 러시아·미국·영국이 체결한 핵 이전·폐기 각서. 소련 시절 개발·생산돼 남은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기는 대가로 안보와 경제를 지원받는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2022년 서명 당사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면서 휴지 조각이 됐다.

☞민스크 협정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과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내전 격화로 이어진 정정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이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체결한 협정. 친러 반군 점령 지역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우크라이나가 국경 통제권을 가진다는 내용이 핵심이지만 흐지부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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