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4일 의회 연설은 자신이 주도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전 협상에 반발하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거칠게 제압한 강압적 외교술을 과시하는 자리가 됐다.
트럼프는 이날 연설에서 “조금 전 젤렌스키 대통령으로부터 서한을 받았다”며 “광물 협정에 서명할 준비가 됐다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어 “(젤렌스키는 편지에) ‘나와 우리 팀은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 지속 가능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일할 준비가 되어 있고,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정말로 높이 평가한다’고 적었다. (젤렌스키가) 이 편지를 보내 줘 고맙다”고 했다.
젤렌스키는 앞서 소셜미디어 X를 통해 입장문도 냈다. 이 글에서 그는 지난달 28일 백악관 정상회담 파행 사태에 유감을 표명하고, 양국 간 광물 협정에 즉각 서명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또 “미국과 트럼프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했다. 그가 X에 올린 글은 트럼프에게 보낸 친서의 내용 핵심 부분을 그대로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젤렌스키는 X 게시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을 제공했음을 기억하고 이에 감사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어 “지난 금요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있었던 우리의 만남이 그런 식으로 진행돼 유감”이라며 “이제 바로잡을 때”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는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광물 협정에 서명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도 했다. 미국 정부가 요구한 ‘평화에 대한 진정한 의지’를 보이겠다며 러시아 동의를 전제로 공중과 해상 전투를 즉각 중단할 수 있다는 ‘예비적 휴전’ 의향까지 밝혔다.
전날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 즉시 중단 방침을 발표하면서 젤렌스키는 전쟁 발발 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결국 고개를 숙이며 사실상의 ‘공개 반성문’을 쓴 셈이다. 그러자 이에 흡족해진 트럼프가 의회 연설에서 자신의 성과를 앞세우며 바짝 엎드린 젤렌스키를 다독이는 모습을 연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적과 동맹, 우방을 가리지 않고 힘으로 밀어붙여 길들이는 트럼프의 외교술이 젤렌스키와 갈등 뒤 그를 제압하는 상황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해석이다.
광물 협정은 미국이 그간의 전쟁 지원 대가로 우크라이나에 매장된 희토류 등 전략 광물 개발권을 확보하는 내용이 골자다. 트럼프는 이를 종전 후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을 위한 ‘담보’로도 여겨왔다. 양국은 지난달 28일 워싱턴 DC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이 협정에 서명을 하려 했으나 회담이 파행으로 치달으면서 불발됐다.
미국은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하고, 정권 교체 가능성을 시사하는 등 젤렌스키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했다. 데니스 시미할 우크라이나 총리도 이날 “미국은 중요한 파트너이고 우리는 이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유럽 외교가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반발을 제압한 트럼프가 이제 유럽을 압박하며 러시아와의 종전 협상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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