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트랜스젠더 연방 하원의원인 사라 맥브라이드(가운데) 의원이 지난 1월 미 워싱턴 DC 연방의사당 안을 걷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11일 미국 연방의회에서 최초의 트랜스젠더(성전환) 민주당 하원의원에게 공화당 의원이 “미즈(Ms)” 대신 고의적으로 “미스터(Mr)”라는 호칭을 쓰면서 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는 남성과 여성, 두 가지 성(性)만 있다”고 천명한 뒤 공화당 의원들이 이 트랜스젠더 의원의 성별을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생겨난 일이다.

이날 하원 외교위원회 유럽 소위원회에서는 군비 통제 및 유럽에 대한 미국의 군사 지원에 대한 청문회가 진행 중이었다. 발단은 소위원장인 키스 셀프(공화당·텍사스) 의원이 미국 최초의 트랜스젠더 하원의원인 사라 맥브라이드(민주당·델라웨어) 의원에게 발언권을 주며 “미스터 맥브라이드 의원”이라고 부른 게 문제가 됐다. 맥브라이드 의원은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했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남성을 지칭하는 ‘미스터’를 사용한 것이다.

이에 맥브라이드 의원은 잠시 언짢은 표정을 짓더니 이내 “감사합니다. 위원장님”이라고 말하면서 위원장 앞에 ‘마담(Madam)’이라는 여성 호칭을 붙였다. 셀프 위원장은 남성 의원이었지만 의도적으로 여성을 뜻하는 ‘마담’을 붙여 자신의 성별을 인정하지 않은 불쾌한 상황을 위트 있게 넘어가려 한 것으로 풀이됐다.

11일 미 연방의회 하원 외교위원회 소위원회 회의장에서 트랜스젠더 출신 사라 맥브라이드(맨 오른쪽) 의원의 성별 호칭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는 키스 셀프(왼쪽) 의원과 빌 키팅(가운데) 의원. /X

하지만 사건은 두 사람 사이에 앉아있던 민주당 간사 빌 키팅(민주당·매사추세츠) 의원이 폭발하면서 시작됐다. 키팅 의원은 짐짓 이 상황을 모르는 척 하려던 맥브라이드 의원의 발언을 막아서며 셀프 위원장에게 “잠깐만요, 위원장님. 다시 한번 (맥브라이드 위원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라고 따졌다.

셀프 위원장이 “우리는 하원 본회의장에서 기준을 세웠다. 미스터 맥브라이드 의원”이라고 했고, 키팅 의원은 이에 “그 기준이 무엇이냐. 위원장은 지금 위원회 규칙을 어기고 있다. 당신은 양심이 없냐. 이건 정말 품위 없는 행동”이라고 항의했다. 키팅 의원의 고성에 회의장 분위기는 급속히 악화됐고, 결국 셀프 위원장은 “산회를 선포한다”며 회의를 중단시켰다. 그러자 키팅 의원 역시 서류철을 덮어버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회의 파행 이후 셀프 위원장은 소셜미디어에 “남성과 여성 두 성별만 인정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라고 썼다.

미 언론들은 “공화당 하원의원들이 공식석상에서 맥브라이드 의원을 여성으로 언급하지 않는 관행을 확립한 것처럼 보인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맥브라이드 의원이 첫 본회의장 연설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당시 공화당 의원들은 맥브라이드 의원을 향해 “델라웨어의 신사(gentleman)”라고 부르며 논란이 됐다. 공화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속기사가 맥브라이드 의원의 호칭을 ‘미스터’로 쓰는지 ‘미즈’로 쓰는지도 확인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앞서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의원이 의장을 맡고 있는 미 하원은 작년말 트랜스젠더 여성이 의회의 여성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의회 내부 규칙을 발표했고, 맥브라이드 의원은 자신의 의원실 내에 딸려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면 된다며 이 정책에 대해 반발하지 않고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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