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뉴욕 휘트니미술관 8층에 내리자 벽을 타고 악보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오선보(五線譜·음의 길이나 높낮이를 나타내는 악보)가 아니라, 4줄로 된 악보였다. 심지어 모든 음표는 악보를 마치 일부러 피하는 듯 절묘하게 벗어나 있었다. 이 작품의 이름은 ‘유령 노트<Ghost(ed) Notes>’. 휘트니 미술관에 따르면 작가는 일반적으로 다섯 줄로 이루어지는 악보를 미국 수화(手話·ASL)에서 표현하는 방식을 응용해 네 줄로 바꿨다. 또 선과 음표를 엇나가게 그리면서 의도적으로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악보를 그렸다. 청각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사회에서, 이들이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을 나타냈다고 한다.
팝아트의 선구자인 앤디 워홀, 추상표현주의 작가 잭슨 폴록, 한국이 낳은 비디오 아트의 대가 백남준을 사랑한 미국 현대 미술의 산실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는 지난달부터 한국계 미국인 예술가 김 크리스틴 선(Kim, Christine Sun)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도 전시를 지원했다. 김 작가는 청각 장애 때문에 수화를 이용해 대화하는 예술가다.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이 겪는 답답함과 사회에 대한 분노를 위트 있게 풀어내면서 전 세계 애호가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기사에서 그에 대해 “소리의 풍경을 확장하는 예술가”라고 표현했다. 이번에 휘트니미술관은 1, 3, 8층을 전부 그의 작품으로 채웠다. 이날 본지와 인터뷰에서 김 작가는 “모든 사람이 나에게 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소리를 가지고 놀고 싶었다”고 했다.
휘트니미술관은 인터뷰 며칠 전 메일로 안내문 형식의 2페이지짜리 파일을 보냈다. 기사를 작성할 때 사용하지 말아야 할 언어와 관련된 지침이다. 예를 들어, ‘태어날 때부터 청각장애’ ‘그녀는 들을 수 없다’ ‘영감을 주는’ 같은 표현은 청각장애를 결핍이나 공백으로 간주하거나 불쾌감을 줄 수 있어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김 작가는 과거 대형 미술관의 유명 큐레이터와 만났는데 1시간 중 45분을 농인(聾人) 문화에 대해 설명하느라 사용했고, 정작 작품 얘기는 15분밖에 못해 너무 화가 났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가가 꿈이었나.
“많은 사람이 그 부분을 물어본다는 사실이 재밌다. 뉴욕으로 이사 와서 많은 예술가와 작품을 보며 ‘예술을 하며 돈을 벌 수 있겠구나’라는 조금 순진한 생각을 했다.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여러 차례 스스로 물었고 결국 전업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탐색하기 시작했다.”
1980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김씨는 로체스터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시각 예술로 유명한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와 바드 칼리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7~2014년에는 휘트니미술관에서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소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2008년 독일 베를린에 갔다. 베를린에서는 다양한 미술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모두 (소리를 이용한) 사운드 아트 전시였다. 처음엔 나는 ‘이런 전시회도 있구나. 나와는 상관이 없다’라고 생각을 했다. 소리가 대세였고 시각 예술이 없는 것을 보고 몸에 힘이 빠졌다. 그런데 문득 사람들이 왜 소리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궁금해졌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전달하기 위해 소리를 사용하고 있었고 흥미로웠다. 나는 모든 사람이 듣고, 모든 사람이 말하는 세상에서 자랐다. 소리로 작업하려고 했을 때 많은 내면의 갈등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소리를 갖고 놀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의 작품은 여러 차례 변화했다. 처음엔 주로 자신이 직접 참여하는 퍼포먼스 아트를 했다. 그러다 ‘작품 속에 등장하기보다 내 작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그림을 그리거나 도자기를 만드는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만들었다. 김씨 작품은 ‘분노’와 ‘위트’가 함께 녹아 있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작품인 ‘청각 장애인의 분노’에서 그는 목탄으로 도표를 그려가며 일상생활에서 어떤 상황이 자신을 화나게 하는지 재밌게 표현한다. 예컨대 ‘여행할 때 분노의 정도’에서는 ‘비행기에서 자막 없는 영화가 있을 때’ ‘우버 운전자가 문자 대신 전화할 때’ 등 상황에서 화가 난다고 표현하고 있다.
-분노와 위트가 양립할 수 있나.
“어렸을 때 나는 매우 진지하고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만날 때 나는 그들의 첫 청각장애인인 경우가 많다. 나와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도 모른다. 긴장을 풀게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유머를 할수록 사람들과 더 빨리 연결될 수 있고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나는 화를 낼 수 있지만 유머를 섞어 전달하면 사람들은 도망가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나에게 ‘크리스틴, 당신의 유머가 매우 한국적이야’라고 하기도 한다. 분노든 재치든 어떤 상황에 굉장히 빠르게 반응한다는 의미다.”
그의 작품에는 아시아 또는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시끄러운 소리의 종류에 대해 표현하는 작품에는 술을 마셨을 때 얼굴이 붉어지는 ‘아시안 플러쉬(Asian Flush)’가 나온다. 아시안 플러쉬가 나타날 때 심장이 빨리 뛰곤 하는데 그 심장박동 소리가 그에게는 매우 큰 소리로 다가온다는 의미다.
-한국에 대한 내용도 작품에서 볼 수 있다.
“내 가족은 1970년대에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함께 캘리포니아에 이민 왔다. (자료집을 펴보이며) 이분이 작년에 돌아가신 내 할머니다. 내가 자랄 때 모두 한국 전통 음식을 만들어 먹곤 했다. 어렸을 때 (미국과 달리) 항상 1월 1일에 설날을 지냈기 때문에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심지어 어렸을 때 나는 ‘돌잡이’도 했다. 1980년대만 해도 청각장애 교육은 전부 백인 교사가 했다.”
김씨는 독일인 예술가 남편과 두 명의 딸이 있다. 현재 가족들과 사는 곳도 독일이다. 독일에 살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한국에서 잠시 살아보는 것도 그가 가진 꿈이다. “한국에 갈 때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꼈다. 모든 옷이나 신발도 잘 맞고, 심지어 호텔 조명도 너무 밝지도 않고 너무 어둡지도 않았다. 내 몸이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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