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지도부가 단체 채팅방에서 나눈 대화 재구성. /그래픽=이철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최고위 인사들이 메신저 ‘시그널’ 단체 채팅방에 기자가 있는 줄 모르고 예멘 이슬람 무장 단체 후티 공습 계획을 논의한 사실이 드러난 사태의 파장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트럼프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여론을 의식해 수습에 나섰지만, 허술한 보안 체계와 정보 유출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는 25일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가 알기로 채팅방에 기밀 정보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습은 완전히 성공적이었다”며 “그들이 사용한 앱(시그널)은 정부와 언론의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앱”이라고 했다. 대화 내용 중 군사 기밀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이다.

트럼프는 이번 파문을 일으킨 당사자인 마이클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두둔했다. 당시 채팅방에는 왈츠가 실수로 초대한 잡지 ‘애틀랜틱’의 제프리 골드버그 편집장이 들어와 있었는데, 트럼프는 “그(왈츠)가 사과할 필요가 없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왈츠 같은) 매우 훌륭한 사람을 비판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대신 트럼프는 이번 사건을 기사로 낸 골드버그에게 화살을 돌렸다. 트럼프는 “골드버그는 (채팅방이) 지루하다고 느꼈고 일찍 나갔다”며 “나는 그가 우리나라에 해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트럼프는 골드버그가 해당 채팅방에 들어가게 된 경위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골드버그는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미군 전사자들을 ‘루저(loser·실패자)’라고 폄하했다는 기사를 보도해 트럼프를 곤란하게 만든 악연이 있다.

왈츠는 25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내가 채팅방을 만들었고 나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서도 골드버그를 비판했다. 그는 “어떤 사람의 연락처에 다른 사람의 전화번호가 입력돼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실패자(골드버그)를 다른 사람처럼 봤다”고 했다. 전화번호 저장 오류로 골드버그를 초대했다는 취지다. 왈츠는 “이 사람은 미국 대통령을 비방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거짓말과 음모에 가담한 사람”이라며 “그리고 그는 어떻게든 누군가의 연락처에 들어가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왈츠는 “일론 머스크(테슬라 최고경영자)와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는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아내기 위해 최고의 기술 전문가들을 고용했다”며 “그(골드버그)가 다른 기술적 수단을 동원해서 그랬는지 알아낼 것”이라고 했다.채팅방 멤버였던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과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장도 이날 상원 정보위 청문회에 출석해서 “기밀은 없었다”고 했다.

이처럼 당사자들의 적극 엄호에도 불구하고 1급 국가안보를 비상식적으로 허술하게 다뤘다는 비판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메신저로 국가안보 사항을 논의한 행위 자체가 곧바로 불법으로 단정짓기는 곤란하겠지만, 대통령 기록법이나 연방기록법 등 기존 법규정을 헝클어지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이 사용한 시그널은 보안성이 뛰어나다고 알려졌지만 AP는 “시그널의 암호체계는 누구라도 활용할 수 있는 오픈소스로 돼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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