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수 600여명이 미 대학에 대한 행정부의 공격을 비판하는 연판장에 서명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최고 명문대이자 지성의 산실인 하버드대학교 교수 600여명이 현재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反)이스라엘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정부 뜻에 따라 학교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연방 보조금을 뺏고, 반이스라엘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잡아가는 현재 정부 정책이 미국을 그동안 지탱해 온 민주주의 원칙에 정면으로 어긋난다는 것이다.

27일 하버드대 학생신문인 하버드크림슨은 “월요일부터 수요일 저녁까지 하버드 9개 학부에서 약 600명의 교수들이 대학가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공격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연판장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이 서류는 하버드 이사회에 보내졌다. 9개 학부에는 컴퓨터 과학, 수학, 비교 문학, 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가 포함됐다. 예술과학대학 소속 교수가 260여명으로 가장 많았고, 의대 소속이 110여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

교수들은 연판장에서 만약 트럼프 정부가 하버드대의 자유를 위협할 경우 이사회가 이에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수들은 “미 대학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은 표현, 결사, 탐구의 자유를 포함한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하버드가 (컬럼비아대 같은) 공격을 받는다면 다른 길을 택해야 한다”고 했다. 최근 트럼프 정부는 작년 대학가에 퍼진 반이스라엘 시위의 진앙 역할을 했던 컬럼비아대에 연방 보조금 4억 달러를 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후 컬럼비아대는 캠퍼스 내에 체포 권한이 있는 특수 경찰과 36명을 고용하고 중동 연구 프로그램에 대해 감독을 하는 부총장을 임명하기로 하는 등 백악관의 요구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버드크림슨은 “컬럼비아대 사건에 침묵을 지켜온 하버드가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하버드 교수진의 통일된 요구”라고 했다.

하버드대는 대학가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공격이 컬럼비아대를 넘어 다른 대학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현재 대응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이 신문에 따르면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은 교수들에게 “다른 대학의 지도자들과 비공개로 논의 중”이라고 했다. 일부 동문들도 교수들과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500여명의 하버드대 동문들은 최근 가버 총장에게 편지를 보내 “하버드대가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고 대학 운영의 독립성을 유지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한편 반이스라엘 시위에 참여한 학생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압박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은 25일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사는 터프츠대 박사과정생 뤼메이사 외즈튀르크를 체포해 구금했다. 튀르키예 출신인 그는 지난해 3월 대학 신문인 터프츠데일리에 반이스라엘 성향의 칼럼을 공동 기고한 적이 있다. 또 지난 8일엔 지난해 봄 대학가 시위를 주도한 컬럼비아대 학생 마흐무드 칼릴을, 17일엔 “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선전물을 퍼뜨리고 반이스라엘주의를 조장했다”는 이유로 조지타운대 박사후과정 연구원 바다르 칸 수리씨도 구금했다.

한편 남미 가이아나를 방문 중인 마코 루비오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대학가 반이스라엘 시위와 관련해 비자가 취소된 사람 수를 묻는 질문에 “현재까지 아마도 300명 넘을지 모른다”며 “‘미치광이’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그들의 비자를 취소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