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2 스텔스 폭격기./ 미공군

이란으로부터 핵개발 포기 협정을 받아내고,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세력의 이스라엘 공격과 홍해 민간 선박 공격을 막기 위한 미국의 군사적 압박이 최대 수위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에게 “5월 초까지 두 달 내에 새로운 핵무기 개발 포기 협정을 맺으라”는 서한을 보냈다고 밝힌 바 있다.

미 공군의 글로벌타격사령부 대변인은 27일 “B-2 폭격기들이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에 위치한 미 해군지원시설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이는 위성 사진과 이들 폭격기 조종사들이 민간 항공관제센터와 통신한 내용의 녹음 공개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워존(The War Zone)을 비롯한 미국의 군사전문 매체들은 ‘하늘의 유령’으로 불리는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 3대가 이미 인도양의 영국령 디에고 가르시아 섬 기지에 배치된 위성 사진을 공개했다. 워존은 또 지난 48시간 내에 3대 이상의 C-17 수송기와 10대의 공중급유기도 이 섬에 전진 배치됐다고 전했다.

위성 촬영 사진에 포착된, 디에고 가르시아 섬 군사기지에 배치된 3대의 미 스텔스 전략 폭격기 B-2./AP 연합뉴스

디에고 가르시아 섬은 테헤란과 최단 거리도 3795㎞에 달해 이란의 미사일이 도달할 수 없지만, B-2 폭격기들과 미 전투기들은 공중 급유를 이용해 폭격이 가능하다.

또 미국 유타주의 힐 공군기지에서 출발한 F-35 전투기 4대도 지난 22일 미 공군의 공중급유 부대의 지원을 받으며 이탈리아 시칠리아 상공을 지나 중동으로 향했다. 공중급유 부대와 시칠리아 항공관제당국과의 통신 이후, 스텔스 전투기 F-35 4대는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지난 22일 미 본토를 떠난 F-35 전투기 4대와 함께 이탈리아 시칠리아 상공을 지나는 미 공중급유기. 이후 F-35는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X 스크린샷

미국은 28일 새벽에도 예멘의 수도 사나를 비롯해 반정부 세력인 후티 군이 장악하고 있는 거점 도시들을 강타했다.

28일 새벽 미국의 공습으로 불타는 예멘 사나의 후티 군 관련 건물들/X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월 15일 “깡패 집단”에 대한 첫 공격을 시작한 이래, 미국의 예멘 군사작전은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17일에도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후티 반군이 발사하는 모든 총알은 이란의 무기와 지도부에서 발사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고, 이란은 그 결과를 반드시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후티 군사작전은 미사일 발사대만 공격했던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주요 인물의 제거, 도심 군사시설 파괴 등 보다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다.

◇B-2 폭격기 5대 이상, 항모 2개 전단 인도양 배치

25일 공개된 위성 사진에선, 이미 3대 이상의 B-2 폭격기가 디에고 가르시아에 도착한 것이 확인됐다. 이 위성 사진에는 또 KC-135 공중급유기 7대, C-17 수송기, P-8A 포세이돈 해상 초계기가 포착됐다.

이에 앞서, 미국 미주리 주의 화이트먼 공군기지를 떠난 콜사인(군 암호명)이 피치(Pitch)-11, 피치-12인 2대의 B-2 조종사들이 호주 북부를 지나 서쪽으로 날며 호주 항공 관제당국과 나눈 통신도 공개됐다.

미국이 보유한 20대의 B-2 폭격기는 모두 화이트먼 기지에 배치돼 있다. 워존은 화이트먼에서 모두 5대가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로 발진했으며, 이중 한 대는 하와이의 히캄 공군기지에 ‘비상 상황’으로 착륙했다고 전했다.

C-17 수송기도 지난 주부터 가르시아 기지 외에, 히캄 공군기지와 괌 앤더슨 기지로 이동했다. 25일에는 추가로 C-17 수 대가 이란의 공격권 안에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알 우데이드 기지를 떠나 가르시아 섬으로 이동하는 것이 공개된 비행 정보를 통해 드러났다.

또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3월 20일 중동에 배치된 해리 S 트루먼 항모(航母) 전단의 1개월 연장 배치와, 지난 2일 부산을 방문하고 태평양에 머물고 있는 칼 빈슨 항모 전단의 인도양 이동을 명령했다.

◇2022년 미ㆍ중 갈등 때도, B-2 폭격기 4대 호주 배치

미국은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 당시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미ㆍ중 관계가 극도로 악화됐을 때에도, 호주에 B-2 폭격기 4대를 배치해 중국에 강력한 신호를 보냈다. 4대는 미국이 보유한 B-2 폭격기의 20%에 해당한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1기 때인 2020년 카셈 술레이마니 이란 최정예부대 쿠즈(Quds) 사령관을 제거했을 때에도 모두 6대의 B-2 폭격기를 디에고 가르시아에 배치해 이란의 보복 조치를 억제했다.

B-2 폭격기는 적의 정교한 방공망을 뚫고 3만 파운드급 GBU-57/B MOP(벙커버스터) 폭탄을 투하할 수 있다. MOP는 현재 B-2만이 탑재 운용할 수 있으며, 지하 깊숙하게 위치한 이란의 강화된 핵ㆍ지휘통제 시설을 타격할 수 있다. B-2는 작년 10월에도 예멘 후티 세력의 지하 미사일 강화 격납고 파괴에 동원됐다. 한 대 당 모두 18t의 재래식ㆍ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다.

1994년 태평양에서 B-2 폭격기가 폭탄 투하 훈련을 하는 장면 /미 국방부

◇트럼프 행정부 “민간 선박 100여 척 공격한 후티, 유럽 해군은 상대 못해”

후티 반군은 2023년 11월 이스라엘군의 가자(Gaza) 군사작전이 시작된 이래 지난 1월까지, 홍해에서 지금까지 100여 척의 화물선과 유조선을 공격했으며 2척을 침몰시켰다.

후티 군은 이란의 지원과 자체 개발을 통해 매우 정교한 드론과 대함(對艦) 크루즈ㆍ탄도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마이클 왈츠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5일의 후티 공습에 앞서 민간 앱 시그널의 채팅방에서 미 안보 책임자들과 나눈 대화에서 “우리가 오늘 손을 떼든 안 떼든, 유럽 해군은 후티가 현재 쓰고 있는 정교한 대함 무기, 크루즈 미사일, 드론 유형을 상대로 방어할 능력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 “이란에 결코 핵무기 허용 안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두 달 내에 핵무기 개발 금지 협정을 맺으라고,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에게 서한을 보낸 사실을 폭스 비즈니스 인터뷰에서 공개했다. 이 서한은 UAE를 통해 이란에 전달됐다.

그는 “앞으로 며칠이 이란과의 관계에서 흥미로워질 것”이라며 “우리는 그들이 핵무기를 갖게 할 수 없다. 평화적인 딜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만, 다른 옵션[군사적 방안]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현재 이란이 축적한 60%의 농축 우라늄은 90%까지 농축될 경우 6개의 핵무기를 만들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의 공격 범위 밖에 미국의 전략 무기들을 포진시켜, 핵무기 포기 협정과 후티 반군 지원 중단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이루려는 최대한의 군사적 압박 작전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미 전략무기 자산을 집결하는 현재의 움직임이 이란에 대한 공격의 전조(前兆)인지, 이란에 신호를 보내기 위한 의도적 행동인지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

◇디에고 가르시아: 걸프 전쟁ㆍ대테러전쟁의 발진 기지

영국이 1814년부터 식민 지배하는 디에고 가르시아 섬은 인도양의 차고스 제도에서 가장 큰 섬이다. 1971년부터 영국과 미군이 함께 군사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디에고 가르시아 위치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는 지난 1월 차고스 제도를 최근에 모리셔스에 반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대신에 매년 9000만 파운드(약 1431억 원)의 비용을 지불하고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를 임차하겠다는 것이다.

이 기지는 미국이 1990~1991년 1차 걸프 전쟁 때 이라크를 격퇴할 때 매우 중요한 병참 허브였다. 또 2000년대에는 탈레반과 알 카에다를 상대로 한 대테러전쟁에서도 중요한 발진 기지였다.

한편 이란 외무부는 27일 트럼프 서한에 대해 “군사적 압박 속에서 미국과 직접 협상하는 것을 반대한다”며, 오만 정부를 통해서 “간접적인 대화는 가능하다는 답신을 보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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