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대만 침공’을 미국이 대응해야 할 최우선이자 유일한 과제로 상정하고 미군 전략의 전면적인 재편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30일 보도했다. 중국 견제를 미군의 최대 목표로 세우고, 다른 국가들의 위협은 해당 지역에 있는 미국의 동맹들이 국방비 증액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대응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미군 전략 변화로 주한미군의 역할 재조정과 함께 한국에 대한 방위비 분담 압박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서명해 이달 중순 국방부 내부에 배포했다고 알려진 ‘임시 국가 방위 전략 지침(Interim National Defense Strategic Guidance)’은 미국이 중국과의 잠재적 충돌에서 반드시 승리하도록 군사 역량을 중국 대응에 집중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WP는 “9쪽짜리 보고서는 국방부 내부에서만 열람됐다”고 전했다. 이 지침은 미 국방부 인력·자원의 제약을 고려해 유럽·동아시아·중동의 동맹국들이 미국 대신 러시아·북한·이란 등의 위협에 대한 억제를 대부분 맡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美 안보전략 대대적 전환… “나토, 美 없이도 러 대응할 수 있게 준비돼야”

보고서엔 해당 지역의 동맹국들이 국방에 더 많은 지출을 하도록 압력을 가할 계획이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국이 중국에 집중하는 사이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는 러시아는 유럽의 동맹국들이, 북한은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 우방이 군사적으로 더 철저히 대응하도록 압박하겠다는 뜻이다. WP는 “이 지침이 트럼프의 국방 기조를 구체화한 실행 계획으로, 미국의 글로벌 병력 배치 및 외교·안보 정책의 대대적인 전환을 예고한다”고 분석했다. 전임인 조 바이든 대통령 시절인 2022년 발표됐던 미 국방 전략은 “러시아의 침략을 억지하고 북한·이란 및 폭력적인 극단주의 조직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및 동맹국과 긴밀히 협력하겠다”라고 되어 있다.

보고서는 중국을 미 국방부의 유일한 위협이라 규정하며 “기정사실화된 중국의 대만 점령 시도를 저지하는 동시에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것”이 국방부가 준비해야 할 ‘단 하나의 전략 계획’이라고 명시하고 있다고 WP는 보도했다. 미국은 대만 방어를 위한 전력 증강 방안으로 잠수함과 폭격기, 무인 선박, 특수부대 배치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지하 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정밀 폭탄 등 고성능 무기의 활용도 강조됐다. 동시에 대만 정부에 대해선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10% 수준까지 증액하라고 압박할 방침도 시사했다. 트럼프는 그간 대만의 방위비 분담 증액을 요구해 왔으며,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 담당 차관 지명자도 상원 청문회에서 이 비율을 10%로 특정했었다.

아울러 러시아·북한·이란 등 다른 지역의 위협에 대해선 미군의 직접적 대응을 자제하고, 동맹국들에 방위비 부담과 억제 임무를 넘기겠다는 내용도 보고서에 담겼다. 미국과 유럽의 군사 동맹인 나토에 관해선 “미국의 전력이 투입되지 않더라도 러시아를 저지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돼야 한다”고 명시했다.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에 대한 부담을 늘릴 방침이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 WP는 보고서가 “미국은 러시아의 군사 행동에 대해 본토 방어나 중국 억제를 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병력만 제공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즉 러시아의 추가 침공이 발생하더라도 미군이 대규모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미 국방부 본부 펜타곤 전경. /로이터 연합뉴스

이번 보고서의 내용은 트럼프가 대통령 1기(2017~2021년) 집권 당시부터 줄곧 주장해 온 안보 전략과 기조를 같이한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기간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 인출기)’이라고 지칭했고 “내가 집권 중이었다면 한국이 연간 100억달러를 방위비로 지불하고 있었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국방부 정책을 총괄하는 콜비 역시 저서 등을 통해 “주한미군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부로 재정의해야 한다”며, 한반도 주둔 미군을 중국 억제 수단으로 활용하자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국·일본에 대한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이 다시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이란 및 중동 문제의 조기 안정, 이스라엘·하마스(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세력) 분쟁 완화 등도 조속히 마무리하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 이는 미군이 여러 지역의 갈등에 전력을 소모하지 않고 중국이라는 주요 경쟁자에 역량을 집중하도록 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고 풀이된다.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