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중 지진에 무너진 태국 방콕의 감사원 청사 건물 더미에서 30일 구조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8일 규모 7.7의 지진이 강타한 미얀마에서 사상자가 5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2021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와 반정부 세력 간 무력 충돌로 기반 시설이 무너진 데다, 열두 차례 이상 여진이 이어지고 있어 구조와 사상자 집계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사상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AP 등에 따르면 미얀마 군정은 28일 오후 12시 50분쯤 중부 내륙의 만달레이 인근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1644명이 숨지고 3408명이 부상했다고 29일 밝혔다.

미얀마 불교의 3대 성지 중 하나인 만달레이의 마하무니 황금사원 탑이 28일 발생한 지진으로 무너져 내렸다. 미얀마에서는 주요 기반 시설이 파괴되고,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와 반정부 세력의 무력 충돌이 이어져 구조 작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EPA 연합뉴스

사망자 수는 지진 발생 당일 처음 발표된 144명에서 하루 만에 약 11배로 늘었다. 건물이 붕괴되고 도로 곳곳이 끊어졌을 뿐만 아니라 내전으로 정부가 통제하지 못하는 지역이 다수여서 정확한 피해 규모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으로 1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확률이 71%라고 추산했다. USGS는 지진의 체감 정도를 나타내는 ‘수정 메르칼리 진도 등급(MMI)’ 기준 9등급의 진동에 약 371만명이 노출됐다고 분석했다. MMI 진도 등급은 12단계로 나뉘는데, 9등급은 사람이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땅이 흔들리고 일반적인 건물이 붕괴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래픽=백형선

이에 따라 사망자 수가 10만명 이상일 확률이 36%, 1만~10만명일 확률이 35%라고 추산했다. 경제적 피해도 미얀마의 국내총생산(GDP) 668억달러(약 98조원)를 훌쩍 넘어설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사 와중에도 군정이 반정부 세력에 대한 공습을 지속하면서 구호 활동이 차질을 빚고 있다. 지진 발생 이후 세 시간도 지나지 않은 28일 오후 3시 30분쯤 만달레이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 떨어진 나웅초에서 정부군 폭격으로 최소 7명이 숨졌다고 BBC는 전했다.

29일 미얀마 만달레이 서쪽 이라와디강을 가로지르는 아바 다리가 지진으로 붕괴한 모습./EPA 연합뉴스

현재 유엔과 적십자를 비롯한 국제기구와 중국, 러시아, 인도, 말레이시아 등이 현지에 구조 인력을 파견해 구호 활동을 벌이는 가운데 북부 사가잉 지역 등 곳곳에서 공습이 이어지고 있다고 전해졌다. 톰 앤드루스 유엔 특별보고관은 “터무니없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즉각 모든 군사작전을 중단하라”고 BBC에 말했다.

2021년 쿠데타로 현 군정이 들어선 뒤 미얀마는 4년간 내전을 벌여왔다. 군정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 사령관은 당시 실질적 국가 원수였던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총선에서 크게 승리하자 이를 몰아냈다.

이후 4년이 지났지만 군정은 현재 전체 영토의 4분의 1도 되지 않는 지역만 통제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소수 민족과 민주주의 진영 등으로 구성된 반정부 세력이 전체 영토의 약 42%를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민주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국민통합정부(NUG)는 성명을 내고 30일부터 지진 피해 지역에서 방어 행위를 제외한 군사 작전을 2주간 중지하겠다고 밝혔다.

군정이 반정부 세력 거점에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차단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지진 발생 직후 민 아웅 흘라잉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우리나라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우려는 단체나 국가는 와달라”며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군정이 집권 이후 서방과 단절하고, 특히 반군 장악 지역에 대한 국제 원조를 거부해왔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행보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간 군정은 반군 활동 지역에 인도적 지원을 위한 국제기구가 진입할 수 없도록 봉쇄하고, 구호품을 압수하거나 활동가들을 체포해왔다. 이번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해 일단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반군 지역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USGS에 따르면 이번 지진은 1912년 규모 7.9의 지진이 발생한 이후 미얀마에서 113년 만의 최대 규모로 기록될 전망이다. CNN은 한 지질학자를 인용해 “이번 지진은 원자폭탄 334개가 동시에 터지는 정도의 에너지”라고 전했다. 진앙에서 약 1000㎞ 떨어진 태국 방콕에서도 10명이 사망하고 70여 명이 실종됐다. 이들 대부분은 방콕의 유명 관광지 짜뚜짝 시장 인근 현장에서 건설 중이던 빌딩이 붕괴되며 매몰된 것으로 파악됐다.

☞미얀마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연방 공화국으로 태국, 중국, 인도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1948년까지 미얀마를 식민 지배한 영국은 인구를 구성하는 여러 민족 중 다수인 버마족에서 따온 ‘버마(Burma)’를 공식 국명으로 사용했다. 독립 이후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는 식민 잔재를 청산한다는 명분으로 1989년 미얀마로 국호를 바꿨다. 현재도 일부 서방국가는 군부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 버마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어 국제적으로 두 표기가 혼용된다.

민주화 운동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지는 2016~2021년 국가고문으로 실질적 국가 지도자 역할을 했다. 그러나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총선에서 크게 승리하자 2021년 2월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다. 현재까지 전국에서 정부군과 반정부 세력의 무력 충돌이 이어져 사실상의 내전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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