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임시 국가 방위 전략 지침이 공개되자 유럽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은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이 지침은 중국의 대만 침공을 미국의 최우선 대응 과제로 상정하고, 러시아·북한·이란 등의 위협에 대한 대응은 유럽·동아시아·중동의 동맹국에 대부분 맡긴다는 내용이다.
지난달 미국이 러시아 침공에 직면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원조를 중단하고, 미 외교안보 고위 참모들이 메신저 대화방에서 “유럽 국가들이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비난한 사실이 알려지며 제기된 유럽의 ‘자강론’이 더욱 굳어지고 있다.
독일은 지난달 19일 향후 10년간 최소 5000억 유로(약 797조원)의 국방 투자를 위한 법 개정을 확정했다. 이어서 영국이 매년 134억 파운드(약 25조원), 프랑스가 2030년까지 총 4000억 유로의 방위비를 늘리기로 했고, 덴마크와 네덜란드, 스웨덴, 폴란드 등도 최근 대규모 군비 확장 계획을 발표했다. 스웨덴과 덴마크, 라트비아 등이 징병제를 재도입하거나 확대하고 있고 독일, 영국, 루마니아, 체코 등은 징병제 부활을 논의 중이다.
유럽연합(EU)은 27개 회원국의 방위력 강화를 위한 8000억 유로 규모의 ‘유럽 재무장 계획’을 지난달 4일 내놨다. 총 32개 회원국 중 유럽 국가가 27개인 나토는 2023년 회원국의 국방비 지출 기준을 국내총생산(GDP)의 ‘최소 2%’로 올린 데 이어 최근 3% 이상으로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6월 나토 정상회담까지 모든 나토 회원국이 방위비 지출 가이드라인을 만족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새 지침(GDP의 5% 이상)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 폴란드 등 군사 강국들은 유럽 내 안보에서 미국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하는 장기 구상에도 나섰다.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안보 위협이 계속 커지는 와중에 트럼프 행정부가 나토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는 상황에도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나토 정상회담에서 유럽의 계획을 미국에 제안하는 것이 이들 국가의 계획”이라며 “다만 이러한 논의 자체가 미국이 더 빨리 (유럽 안보에서) 발을 빼도록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미 미국이 유럽에 대한 핵우산 정책을 약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프랑스의 핵 억지력(핵무기)을 이용해 독일 등 유럽 내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독일의 차기 총리 후보인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교민주연합(CDU) 대표도 “유럽은 더는 미국에 의존할 수 없고, 독자적 방위 역량을 갖춰야 한다”며 ‘유럽의 안보 독립’을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