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미얀마를 강타한 규모 7.7의 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사흘 만에 2000명을 넘어섰다. 열악한 현장 상황으로 구조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는 가운데 매몰자들의 생존을 기대할 수 있는 ‘골든타임‘인 72시간을 넘기며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얀마에서 113년 만에 최대 규모로 발생한 이번 지진으로 인해 정치 지형에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BBC는 31일 현지 당국을 인용해 최소 2056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사망자 대부분은 이번 지진의 직격탄을 맞은 만달레이에서 나왔다. 인구 170만명의 만달레이는 미얀마 제2의 도시이자 3500여 개의 불탑이 세워진 불교 문화의 중심지였지만, 이번 지진으로 생지옥으로 변했다. 특히 한낮 기온이 40도까지 치솟는 고온이 이어지면서 건물 잔해 속에 방치된 시신들이 부패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AP는 “미얀마 제2의 도시가 죽음의 냄새로 물들었다”고 했다.
국제사회는 긴급 대응에 나서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병원으로 후송된 부상자들 치료를 위한 긴급 의료 장비를 지진 피해 지역으로 보냈다. 미얀마 군부와 긴밀하게 협력해온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이웃인 태국과 인도 등에서는 구호품과 함께 구조 인력도 파견했다.
그러나 이번 지진의 위력이 워낙 큰 데다 미얀마 건물이 내진 설계가 거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생존자 구조는커녕 희생자 수습까지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지진의 희생자가 1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확률이 71%에 달한다는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예측이 맞아떨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적은 이어졌다. 31일 새벽 만달레이의 아파트 붕괴 현장에서 임신부와 다섯 살 아이가 매몰 60여 시간 만에 중국 구조대에 잇따라 구조됐다고 중국국제방송이 전했다. 만달레이와 인근 지역 주민들을 포함, 최소 5만여 명이 이재민이 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은 여진 공포에 3일째 거리에서 잠을 청하며 깨끗한 물과 음식을 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번 지진은 만달레이와 수도 네피도, 최대 도시 양곤 등 미얀마 3대 도시가 위치해 있는 1200㎞의 ‘사가잉 단층‘을 흔들면서 진행돼 피해가 전국적 규모로 커졌다. 네피도 국제공항 관제탑이 무너져 여객기 운항이 중단됐고, 양곤에서 만달레이로 향하는 고속도로 역시 일부 구간이 파손돼 차량 운행이 차질을 빚는 등 국가의 핵심 인프라가 마비됐다.
이 때문에 2021년 2월 쿠데타를 일으켜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간 정부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군부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군부는 지진 발생 뒤 실시간 사상자 및 피해 상황 집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재난 관리 능력의 부재를 드러냈다.
은둔하던 군부 최고 지도자 민 아웅 훌라잉 사령관은 지진 발생 직후 이례적으로 국제사회 지원을 공개적으로 호소했다. 앞서 군부가 2023년 5월 사이클론으로 400여 명이 사망하고 16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을 때 외국 구호 물품의 반입을 제한하고 구호 인력의 비자 발급을 지연시켰던 것과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인 셈이다. 이번 지진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할 경우 민심 이반이 가속화해 실권(失權)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따른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번 지진으로 군부 장악력이 급속히 떨어질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얀마는 지진 전부터 준내전 상태였다. 2023년 10월 이래 아웅산 수지를 추종하는 민주화 세력이 주축인 국민통합정부가 소수민족 무장 세력과 연대하며 군부에 연전연승을 거뒀고, 군부 장악 지역은 수도 네피도 등 일부 지역으로 축소됐다.
올해 들어 군부가 반군부 세력을 상대로 잇따라 승리를 거두며 반격에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지진을 계기로 군부가 국정 전반에 걸쳐 통제력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민 아웅 훌라잉 사령관이 지진 발생 전날인 27일 국군의날 기념 행사에서 올해 말이나 내년 초 군부가 주도하는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번 지진으로 이 계획은 더욱 요원해졌다는 평가다. 뉴욕타임스는 “내전으로 인한 ‘정글 전쟁‘이 벌어지는 미얀마에서 국민들은 재난이 정권 교체의 전조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진으로 군부의 장악력이 급속히 약화될 경우 미얀마 민주화 세력의 구심점인 아웅산 수지의 신상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군부는 2021년 2월 쿠데타로 민간 정부를 무너뜨린 뒤 국가 고문 겸 외교장관이었던 아웅산 수지를 재판에 넘겨 부패·국가 기밀 누설 등의 혐의로 총 징역 27년을 선고하고 수감했다. 아웅산 수지는 작년 4월까지 네피도 감옥 독방에 수감돼 있다가 가택 연금으로 전환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체적 근황은 공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