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예고대로 세계 각국에 대한 상호 관세 방침을 발표하고 차트까지 동원하며 주요 국가에 물릴 관세율을 발표하자 해당 국가들은 일제히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예상 밖 고율 ‘관세 폭탄’을 맞은 국가들은 강력하게 반발했고, 상대적으로 충격 강도가 낮은 나라들은 협상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는 등 온도 차가 뚜렷했다. 하지만 대부분 나라들이 이번 조치를 트럼프 임기 4년 내내 미국과 지속할 ‘무역 전쟁’의 서막으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최대 견제 대상으로 트럼프 1기(2017~2021년) 때보다 강도 높은 무역 전쟁을 벌이게 된 중국은 강력 반발했다. 미국은 펜타닐(마약성 진통제) 원료 생산·수출을 문제 삼아 지난 2월 4일과 지난달 4일 각각 10%, 총 20%의 추가 관세를 이미 중국에 부과했다. 여기에 더해 2일 트럼프는 대중(對中) 추가 관세 34%를 더하면 트럼프 취임 두 달여 만에 미국이 중국에 추가로 물린 관세율은 54%에 달한다.
미 백악관 캐럴라인 레빗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관세가 기존 관세에 더해지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 기존 관세에 추가된다”고 했다. 트럼프 취임 전 미국이 중국에 부과하고 있었던 관세가 평균 약 20%(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였는데, 여기에 54%가 더해져 관세가 74%로 올라가게 됐다는 뜻이다. 트럼프가 지난해 대선 유세 때 공언한 ‘대중국 60% 관세’를 뛰어넘는 높은 관세율이다.
중국 정부는 트럼프 발표 뒤 “무역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면서 반격을 공언했다.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국제 무역 규칙에 부합하지 않고 관련국들의 정당하고 합법적 권익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방적 괴롭힘”이라며 “중국은 미국에 즉시 관세 조치를 철회하고 무역 상대국과 평등한 대화로 이견을 올바르게 해소하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중국은 지난 2월 미국의 첫 관세 부과 때 미국산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에 추가 관세 15%를 매겼고, 원유, 농기계, 대배기량 자동차, 픽업트럭에는 10%를 매겼다. 지난달 2차 관세 공격에 대해서는 미국산 닭고기·밀·옥수수·면화 등 29품목에 대해 15%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수수·대두·돼지고기·쇠고기·수산물·과일·채소·유제품 등 711품목에 대한 관세율을 10%포인트 높였다. 앞으로도 미국의 급소를 겨냥한 ‘핀셋식 보복’에 집중하며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월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워싱턴 DC로 날아가 트럼프와 조기 정상회담을 하는 등 동맹 관계를 앞세워 관세 폭탄 피하기에 안간힘을 썼던 일본 정부는 이날 공개된 ’24% 추가 관세’에 실망감을 숨기지 못했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지극히 유감스럽다”며 “이번 조치를 재검토해 줄 것을 강하게 (미국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조치가) WTO(세계무역기구) 협정 및 일·미 양자 무역협정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며 “양국 경제 관계, 세계 경제와 다각적인 무역 체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다만 보복 관세 등 맞대응 가능성에 대해선 “구체적 검토 상황을 밝히는 건 삼가겠다”며 말을 아꼈다. 이시바 총리는 정부 부처 수장들과 만나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일본 전문가와 언론들은 “일본이 동맹국인 미국과 보복 관세로 대립하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적한 비관세 장벽을 일부 없애 실리를 챙기는 데 주력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쌀·밀·돼지고기 등 농산물 수입 제한을 일본의 대표적 비관세 장벽으로 꼽는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가 트럼프 앞에서 1000억 달러(약 145조원) 투자 방침을 밝혔음에도 32%라는 고율의 상호 관세가 확정된 대만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대만 행정원은 “미국과의 경제 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관세율로 유감스럽다”며 “미국과 적극 협상해 국익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미국과 갈등한 유럽연합(EU)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 속에서 적극적 대응 방침을 천명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EU에 대해 20% 상호 관세율이 발표되자 “매우 유감이다. 상호 관세로 세계 경제는 엄청난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향후 관세 협상 결렬 시 우리 이익과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추가 조치를 준비 중”이라고도 했다. 유럽의회 최대 정당인 중도 우파 유럽국민당의 요르겐 와르본 대변인은 “친구가 깡패처럼 행동할 때 침착함을 유지하기란 어렵다”며 “이 조치는 수세기 동안 유지되어 온 대서양 관계에 타격을 주는 일”이라며 트럼프를 비난했다.
EU는 미국이 지난달 12일부터 시행한 철강 관세에 대응하기 위한 보복 조치 실행을 앞두고 있다. 이달 중순을 사실상 협상 시한으로 정하고, 협상이 무산되면 13일부터 총 260억유로(약 42조원) 상당의 미국산 상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해 놓았다. 이후 미국과 벌이는 협상 상황에 따라 추가 보복을 추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EU가 미국 은행들의 EU 금융시장 접근을 제한하고, 미국 빅테크 기업의 EU 내 서비스에 대한 조세 및 규제 압박을 강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이 상호 관세율을 발표한 주요국 중에서 영국과 호주는 상대적으로 낮은 10%가 적용됐다. 미국의 핵심 우방국이면서도 관세 폭탄을 피하지 못한 한국·일본·EU 등과는 희비가 엇갈렸지만 두 나라도 긴장을 풀지 않고 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즉각적인 보복 관세 부과보다 협상을 통한 해결을 우선하겠다”고 말했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미국 정부의 관세 부과는 논리적 근거가 없으며 친구답지 않은 행동”이라면서도 “보복 관세는 검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 폭탄’을 맞은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46%의 상호 관세율이 적용된 베트남은 미국과 양자 협상을 벌이는 데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영 라디오 VOV는 “이번 조치로 가구·섬유·전자제품 등 대미 수출품의 타격이 예상된다”며 “미국과 협상할 가능성 등을 타진하기 위해 경제 부처 담당자들이 회동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트럼프가 25%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해 이날 상호 관세율 발표에서 빠진 캐나다와 멕시코는 신중하게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우리 노동자를 보호할 것”이라며 “위기 상황에서는 단결해야 하며, 목적과 힘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보복성 관세를 시행하기보다 종합적 경제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