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7국에 상호 관세를 부과하는 계획을 발표한 다음 날인 3일 미국 주식 시장은 폭락했다. 전날 발표한 관세 수준이 예상보다 더 광범위하고 높아서 글로벌 무역 전쟁 위험이 커진 영향을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관세 폭탄이 월스트리트를 강타했고 글로벌 성장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며 주식 시장이 코로나 팬데믹 최고조 때 이후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이날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모두 크게 내렸다. 다우 평균은 1679.39포인트(3.98%) 내린 4만535.93, S&P500지수는 274.45포인트(4.84%) 떨어진 5396.52로 마감했다. S&P500지수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작년 11월 당선 되기 전 수준으로 떨어졌고, 지난 2월 종가보다 약 12% 하락한 수준이었다. 나스닥 지수는 1050.44포인트(5.97%) 떨어진 1만6550.60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시가총액은 약 3조1000억 달러(약 4500조원) 증발됐고 이는 2020년 3월 이후 가장 큰 규모”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중국산 제품에 부과된 관세를 피하기 위해 생산 거점을 소위 ‘관세 회피 지역’으로 불린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로 옮긴 기업들이 큰 영향을 받았다. 예컨대 나이키의 경우 신발류의 50%가 베트남에서 생산된다. 전날 발표된 바에 따르면 베트남산 제품에는 46%의 관세가 붙는다. 나이키는 14%, 룰루레몬 애슬레티카는 9%, 갭은 20%, 언더아머는 18% 이상씩 빠졌다. 기술주도 폭락을 피하지 못했다. 애플은 9% 엔비디아는 7%, 테슬라는 5%, 아마존은 8% 이상 하락했다.
미국 프리덤 캐피털 마켓의 수석 글로벌 전략가 제이 우즈는 블룸버그에 “공포의 냄새가 감돌고 있다”고 했다. 월가의 공포지수로 알려진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 지수(VIX)는 장마감 시간 29를 웃돌았다. 일반적으로 20미만이면 안정적, 30이상이면 변동성이 높아진 상태라고 부른다. 지난달 11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투자자들이 이렇게까지 급격히 얼어붙은 이유는 관세 부과 수준이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미 경제매체 CNBC는 “시장 참가자들은 트럼프가 최악의 경우 20%의 관세율을 적용할 것을 기대했지만 여러 국가에서 예상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이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들은 안전자산을 찾아 움직이고 있다. 투자자들이 위험 자산인 주식을 팔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미 국채를 사면서 국채 수익률은 하락했다(채권 가격 상승). 글로벌 벤치마크인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이날 오전 0.08%포인트 떨어진 4.04%에 거래됐다(오후 4시 기준). 미국 내에서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블룸버그에 “이번 조치는 물가 상승을 일으켜 그 여파로 고용 감소, 투자 위축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전날 관세 발표 이후 개장한 글로벌 증시도 영향을 받았다. 한국 코스피는 0.76%, 코스닥은 0.2% 하락했다. 일본 닛케이 평균은 2.77%, 홍콩 항셍지수는 1.52% 내렸다.
한편 미국과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이날 미 정부가 부과한 25% 자동차 관세에 대응해 미국산 자동차에 25% 보복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멕시코·캐나다 무역협정(USMCA) 적용 상품에 대해 관세 적용을 유예한 것과 마찬가지로 캐나다 역시 USMCA 적용 상품은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자동차 부품 역시 신규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