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헨리를 대변할 것인가(Who will speak for Henry)?’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최신 호 기사 제목이다. 여기서 헨리는 남성 이름 고유명사가 아니다. ‘많이 벌지만 아직 부자는 아닌 사람들(High Earning, Not Rich Yet)’의 앞글자를 따서 붙인 신조어다. 기사는 이들이 영국 재정에 상당 부분 기여하는 중요한 납세 계층임에도 영국 정치권은 이들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데 관심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헨리를 의인화하면서 “딱하고 가난한 헨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힘든 처지”라고 했다.
‘헨리’는 미국 경제지 포천의 경제 칼럼니스트 숀 툴리가 2003년 처음 사용했다. 처음에는 연 수입이 25만~50만달러(약 3억6000만~7억2000만원) 범위에 속하는 사람을 뜻했지만 경제 상황과 물가, 지역 등에 따라 세부적인 정의는 바뀌어갔다. 현재 영국에서는 연 소득 10만파운드(약 1억8840만원) 정도인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반 출생자)를 가리키는 말로 자리 잡았다.
명목상으로는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녀 양육비와 세금 등을 내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이 없어 저축하거나 투자할 여유가 없다. 그런데도 이들보다 덜 버는 서민과 저소득층에 적용되는 세금 및 각종 사회보장 혜택에선 제외된다. 이런 상황 때문에 헨리들에게는 ‘장부 상 부자(textbook rich)’라는 별칭도 따라붙는다.
대표적인 영국의 ‘헨리’는 런던의 젊은 사무직들로 180만명에 이른다. 이들이 내는 소득세가 영국 전체 세수(稅收)의 절반에 육박한다.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헨리’들이 가장 소외된 유권자층이라고 진단했다. 모아둔 자산이 없어 실직하면 개인뿐 아니라 국가 재정에도 비상이 걸린다. 그러나 집권 노동당은 말할 것도 없고 최대 야당 보수당 등 모든 정당이 ‘헨리’들을 위한 정책 개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소외된 헨리들이 자신들을 스스로 돌보기 시작했다”며 이들의 정치 세력화 가능성을 점쳤다. 4년 뒤 총선에서 ‘헨리’에 해당하는 유권자는 220만명까지 늘어나 이들이 정치판을 뒤흔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