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 중국에 대한 관세를 125%까지 올리자 중국 최대 무역항(港)인 상하이항이 직격탄을 맞아 한산해졌다. 10일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미국행 화물선들로 붐비던 상하이항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선박이 사라졌다”면서 “수많은 수출 업체들이 급히 선적을 중단하고 통관 절차 철회에 나섰다”고 전했다. 트럼프가 중국에 기록적인 125% 추가 관세를 물리기 전인 지난 7~8일만 해도 상하이항에서 대기하던 화물선의 절반 가량이 미국행 선박이었다고 한다.
화타이선물 등 중국 금융기관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 미국 서부와 동부로 떠날 예정이었던 26개의 중국 화물선 운행이 취소됐다. 미·중 선박 화물 운송량(5월 5~11일·예상치)은 한 달 새 40%나 감소했다. 한국 최대 해운사인 HMM과 일본의 ONE, 대만의 양밍이 참여한 새로운 해운동맹인 ‘프리미어 얼라이언스(Premier Alliance)’는 5월부터 운항을 시작할 예정이었던 중국과 미국을 오가는 노선(PN4) 출범을 잠정 중단했고, 세계 1위 해운사인 MSC(점유율 19.9%)은 4월에만 미중을 오가는 노선을 포함한 화물선 운행을 6차례나 취소했다. 차이신은 “중국의 수출업체 상당수가 출하를 전면 중단하고 상황을 관망하고 있으며, 운임도 속절 없이 하락 중”이라고 했다.
중국의 항공 화물 업계의 사정도 처참하기는 마찬가지다. 중국의 주요 항공사들은 이미 화물기 운항을 감축했다. 특히 트럼프가 지난 8일 800달러 이하 소액 중국 소포에 부과하던 관세를 기존 30%에서 90%로 올리거나 고정 관세를 최대 150달러(6월 1일 시행)까지 부과하겠다고 밝히면서 중국의 미국행 화물기 운항이 급감하는 추세다. 중국 민간 항공 물류 업계에선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해외로 배송하는 화물이 전체 항공 화물의 약 60% 이상을 차지한다고 보고 있다.
중국의 제조 공장들에는 ‘주문 취소’ 전화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 광둥성의 장난감 공장 사장은 미국의 상호관세가 9일 발효된 직후 10년 넘게 거래해오던 미국 볼티모어의 한 고객으로부터 주문 취소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미국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는 중국 저장성의 크리스마스 장식품 공장에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납품 중단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전했다.
경제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에 대항할 카드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10일 중국 국가영화국은 “미국 영화 수입량을 적절히 줄일 것”이라고 밝히면서 “미국 정부가 중국에 관세를 함부로 시행하는 잘못된 행위는 국내 관객의 미국 영화에 대한 호감도를 더욱 낮출 것”이라고 했다. 중국 문화여유부와 교육부는 9일 자국민과 유학생들의 미국 여행과 유학 자제 권고를 내렸다.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90%를 장악한 중국은 2023년 이후 최근까지 사실상 미국을 겨냥해 다섯 차례의 광물 수출 조치를 발표했고, 미국의 2~3월 대중국 관세 공격에 대해서는 미국산 농축산물 등에 대해 10~15%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트럼프의 지지 기반을 콕 집어서 반격했다. 상무부는 미국 첨단 기술·방위 기업 제재 명단을 늘렸다. 중국의 외교 라인은 트럼프발 관세전쟁의 틈을 노려 유럽연합(EU), 러시아·북한 관계 개선에도 나서고 있다.
중국이 전체 수출에서 15%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면서 러시아에 대한 수출을 늘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러시아 매체 RBC는 10일 “일부 전문가는 미국의 관세 때문에 중국이 러시아에 상품 공급을 늘릴 수 있다고 본다”며 “관세가 인상되면 중국은 미국에 원자재, 소모품 공급을 중단할 것이고, 러시아 등 브릭스(BRICS) 국가에 상품 공급을 늘릴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