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너리티리포트'의 한 장면. 범죄를 예측해 범죄자를 미리 단죄하는 미래의 모습을 그렸다. /조선일보DB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아 흥행에 성공한 2002년 개봉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범죄가 일어날 시간과 장소, 범행을 저지를 사람을 미리 예측해 범죄자를 단죄하는 미래를 그렸다. 최첨단 치안 시스템은 범죄가 일어나기 전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주는 든든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영국에서 영화와 같은 일이 실제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은 8일 전했다. 영국 정부는 이미 확보된 범죄자 정보를 활용해 살인자가 될 가능성이 큰 사람을 식별하는 ‘살인 예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영국 총리실이 의뢰한 이 프로젝트는 이름, 생년월일, 성별, 민족, 전국 경찰 전산망에 입력된 개인 식별번호 등 정부가 가진 공식 정보에서 얻은 범죄 정보를 활용해 잠재적 범죄자를 파악하는 알고리즘을 분석하고 있다. 이 계획은 ‘살인 예측 프로젝트’라고 불리다가 지금은 ‘위험 평가 개선을 위한 정보 공유’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 프로젝트의 존재는 영국 시민단체 스테이트워치가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확인한 정부 문서 등을 통해 공개됐다. 영국 법무부는 이 프로젝트가 “연구 목적”이며 “공공의 안전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스테이트워치는 정부의 계획이 “냉정하고 디스토피아적”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뿐만 아니라 범죄 피해자의 개인정보까지 무분별하게 수집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법무부와 맨체스터경찰 간 데이터 공유 협약서를 확인한 결과, 경찰이 제공하기로 한 데이터 유형에 가정폭력을 포함한 ‘범죄 피해자’의 개인정보도 명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프로젝트를 위해 수집되는 ‘특수 범주의 개인정보’ 항목에는 정신건강, 중독, 자해, 장애 등에 관한 건강 정보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테이트워치는 범죄를 ‘예측’하는 알고리즘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며 이 프로젝트가 인종차별과 저소득층에 대한 편견만 강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스테이트워치의 소피아 리올 연구원은 “사람들을 폭력 범죄자로 분류하는 자동화된 도구를 구축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며 정신 건강, 중독, 장애 관련 민감 정보를 사용하는 것은 인권침해 요소가 짙다”고 했다.

영국 정부는 프로젝트가 연구용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최소 한 건의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데이터만 사용했다고 반박했다. 영국 법무부 대변인은 “이 프로젝트는 유죄 판결을 받은 범죄자에 대해 보유한 기존 데이터를 이용해 보호관찰 중인 사람들이 심각한 폭력을 저지를 위험성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설계됐다”고 했다. 이어 “살인 범죄를 저지를 위험을 증가시키는 범죄자의 특성을 검토하고, 중범죄 위험성 평가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궁극적으로는 대중을 보호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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