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현지시각 9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발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상호관세를 90일 유예한다고 발표했다./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 0시 1분에 발효된 57국에 대한 상호 관세를 중국을 제외하고 90일간 유예하겠다고 9일 밝혔다. 한국에 대한 25% 상호 관세 등 큰 폭의 관세 인상에 혼란이 이는 가운데 상호 관세 부과 하루도 되지 않아 유예를 선언했다. 트럼프는 대신 미국에 보복 관세로 맞서고 있는 중국에 대한 관세율을 125%로 더 올렸다. 트럼프의 전방위적 관세 전쟁이 유발할 경기 침체 우려로 하락하던 뉴욕 주식 시장은 트럼프의 유예 발표 후 급상승했다.

트럼프는 이날 오후 1시 18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중국이 세계 시장에 보여준 존중의 부족을 근거로, 나는 미국이 중국에 부과하는 관세를 즉시 125%로 인상함을 선언한다”며 “언젠가, 바람직하게는 가까운 미래에, 중국은 미국과 다른 나라들을 갈취하던 시대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거나 용납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한편 이날 중국을 제외한 나라에 부과한 상호 관세는 90일간 유예하겠다고 밝혀 중국과 기타 국가들을 분리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는 “75국 이상이 미국의 대표들(상무부·재무부·미국무역대표부)에 연락해 무역·무역장벽·관세·환율조작 및 비통화적 관세 관련 해결책을 협상하기를 요청했고 이들 국가들이 나의 강력한 제안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형태로든 미국에 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90일 간의 ‘일시중단(PAUSE)’을 승인한다”며 “이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낮아진 상호 관세인 10%가 즉시 발효된다”고 밝혔다. 한국의 경우 25%였던 관세율이 이날 트럼프의 유예 조치로 15%포인트 하향 조정된 10%로 낮아지게 됐다.

중국에 대한 트럼프의 이날 관세 인상은 중국이 전날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를 84%까지 올리며 미국의 관세 ‘폭탄’에 대응한 데 대한 재보복이다. 트럼프는 지난 1월 취임 이후 펜타닐(마약성 진통제) 통제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중국에 두 차례에 걸쳐 총 20% 추가 관세를 부과했고, 지난 2일 상호 관세 조치를 통해 중국에 추가로 34% 관세를 매겼다. 중국이 이에 미국에 대해 똑같이 34% 관세를 부과하자, 트럼프는 지난 8일 50%의 관세를 더 부과해 중국의 관세를 104%까지 올렸다. 중국은 다시 ‘50% 추가 관세’로 대미(對美) 관세를 84%까지 상향 조정했다. 이처럼 관세 맞받아치기로 ‘미·중 관세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트럼프가 이날 중국 관세를 다시 125%까지 올린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가진 행사에서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백악관이 9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X에 올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 중국에 관세 125%로 인상, 그외 국가들에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한다는 내용이다./X

트럼프는 지난 2일 전 세계 국가에 10%의 기본 상호 관세(5일 발효)를 부과하고, 미국과의 무역 적자를 고려해 ‘최악의 국가’로 특정한 57국 등에 대해 별도의 개별 상호 관세(9일 발효)를 최대 50%까지 부과했었다. 트럼프의 9일 유예 조치에 따라 미국의 한국 등 개별 상호 관세 대상으로 지목된 나라들에 대한 관세율은 10%로 일단 일괄 하향 조정됐다. 다만 이미 시행 중인 철강·알루미늄·자동차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 25%는 그대로 유지된다.

지난 2일 상호 관세 발표 이후 하락하던 뉴욕 주식 시장은 트럼프 발표 이후 반등해 큰 폭으로 올랐다. 이날 다우평균은 7.9%, S&P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각각 9.5%, 12.2% 급등해 거래를 마쳤다.

트럼프 발표 직후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 주 전 오늘 시행한 성공적인 협상 전략을 목격했다. 이 전략은 75국 이상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냈다”며 “대통령이 이 시점까지 원칙을 지키며 버틴 것은 대단한 용기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한 주 전 이 자리에서 ‘보복하지 말라. 그러면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모두에게 말하지 않았나”면서 “전 세계 모든 국가가 협상하길 원한다면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관세율을 10%로 낮출 것이다. 중국의 관세는 사태를 계속 악화시킨 데 따른 결과로 125%로 인상된다”고 했다.

베선트는 또 “이건 불공정 행위자에 대한 조치”라며 “우리는 협상을 가장 먼저 요청한 국가들이 중국의 이웃 국가들이라는 사실을 목격했다. 오늘은 베트남을 만날 예정이고, 일본은 줄의 맨 앞에 있다. 한국·인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미국이 벌이는 관세 전쟁의 표적이 중국으로 좁혀졌음을 분명히 하는 한편 한국·일본·베트남 등 중국의 이웃 국가들과 관세 협상을 한 뒤 중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공동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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