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첸 휘트머(맨 오른쪽) 미시간 주지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행정명령과 포고문에 서명한 날인 지난 9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이야기하고 있다. 그레첸 오른쪽으로 맷 홀 미시간 하원의장, 더그 버검 미국 내무부 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 션 더피 교통부 장관,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 등이 서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자리에서, 파란색 파일철로 얼굴을 가린 한 여성의 사진이 뒤늦게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 속 인물은 민주당 차기 대선 주자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 미 정치권에서는 “휘트머가 트럼프의 ‘리얼리티쇼’에 이용당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명령 서명 순간, 갑자기 카메라 앞에

당시 백악관에서 트럼프는 2020년 대선 결과를 부정했던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각종 행정명령과 선언문에 서명하는 자리를 열었다. 여기에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내부 고발자에 대한 법무부 조사 지시, 2020년 선거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전 사이버 보안 책임자에 대한 조사 명령 등이 포함됐다. 이는 공화당 지지자들에게는 반가운 뉴스일 수 있으나, 민주당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휘트머 주지사가 사전 예고 없이 갑자기 불려나와 트럼프 옆에 선 것이다. 휘트머는 미시간 지역 항공방위군 기지 지원과 빙설 폭풍 피해 복구를 논의하러 백악관을 찾았고, 트럼프와 일대일 면담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카메라 앞에 서게 된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파란색 파일철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고, 이 장면은 언론 카메라에 그대로 포착됐다.

2028 미 대선 민주당 대선 주자군으로 꼽히는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 /로이터 연합뉴스

뉴욕타임스는 12일 이 장면을 두고 “휘트머 주지사가 트럼프의 정치적 메시지에 본인의 이름이 연루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얼굴을 가린 것”으로 해석했다. 실제 트럼프가 서명한 행정명령들은 모두 민주당의 노선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내용들이었으며, 휘트머 측도 CNN에 “이 자리에 서명식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휘트머 주지사의 참석은 어떤 정책적 지지도 의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급속히 퍼졌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휘트머 주지사의 행동은 저항의 정치로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NBC뉴스에 익명을 요청한 한 민주당 전략가는 “정치적으로 노련한 주지사로서의 휘트머의 상승세가 꺾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뒤늦게 확산된 사진은 소셜미디어에서 조롱 섞인 반응을 불러왔다. 한 X 사용자는 “휘트머가 서류 뭉치 뒤에 숨어 있는 모습이 내 2살짜리랑 똑같다”고 했고, “트럼프가 휘트머를 부쉈다” “트럼프의 리얼리티쇼에 끌려 들어갔다” “일부러 부른 것”이라는 반응도 뒤를 이었다. 뉴욕포스트는 “휘트머가 트럼프와 연관되어 보이는 것을 피하려다 오히려 더 눈에 띄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휘트머는 민주당 내에서 2028년 대선 주자군 중 한 명으로 꾸준히 거론되어 왔다. 특히 미시간처럼 대선 승패를 가르는 ‘경합주(스윙스테이트)’에서 두 차례 승리를 거둔 경력은 민주당에서 높이 평가받는 자산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당내 진보 지지층 사이에서는 정체성에 혼란을 준 행보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휘트머 본인은 이후 인터뷰에서 “내 역할은 미시간 주민을 위한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 임무를 수행하러 간 것”이라며 후회는 없다고 밝혔지만, 민주당 안팎에서는 “트럼프가 연출한 장면에 이용당했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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