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 시민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현지 방문을 보도한 신문을 읽고 있다./AFP 연합뉴스

미국과 무역 전쟁 중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올해 첫 해외 순방지로 동남아 3국을 방문, 우방국과의 결집을 노린다. 미국의 대(對)중국 ‘상호 관세’ 125%에 동일한 보복관세를 부과한 중국은, 희토류 6종과 희토류 자석의 미국 수출 제한을 지난 4일부터 시행하는 등 강대강 대치를 지속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웃 우군을 확보할 필요가 높아졌다.

중국 외교부는 시진핑이 14~18일 베트남·말레이시아·캄보디아를 국빈 방문한다고 밝혔다. 시진핑이 방문하는 3국은 2018년 미·중 1차 관세 전쟁 이후 중국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에 따라 교역 규모가 급증한 국가들이다. 2차 관세 전쟁이 개시된 만큼, 동남아를 대체 시장으로 활용하는 한편, 제조 거점으로 삼아 우회 수출을 늘리는 전략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은 14일 점심 베트남 하노이 공항에 도착한 뒤 서면 연설에서 “베트남과 더 높은 수준과 더 넓은 범위에서 더 깊은 협력을 추진하고 싶다”고 밝혔다. 시진핑은 이날 또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회담할 예정이다. 또럼은 지난해 8월 서열 1위 권력을 승계한 뒤 15일 만에 중국을 찾아 시진핑을 만나고 ‘베트남·중국 운명 공동체’ 관계를 재확인했다. 시진핑은 15∼18일에는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에 머물며 각각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 훈 마네트 캄보디아 총리와 만난다.

베트남은 중국산(産) 중간재를 대거 수입해 완성품을 만드는 국가로, 중국과의 교역 규모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 가운데 가장 큰 2600억달러(약 371조원·2024년)다. 베트남의 무역에서 중국 의존도는 26%에 달한다. 시진핑은 베트남 방문을 앞두고 “관세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고 미국을 겨냥하면서, “중국과 베트남은 홍색(紅色·사회주의) 유전자를 계승하며, 양국은 산업·공급망과 5G·인공지능·친환경 발전 등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글을 베트남 인민보에 실었다.

중국은 올해 아세안 순회 회장국에 오른 말레이시아에도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리창 중국 총리는 지난해 6월 중국 총리로서는 9년 만에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무역·투자·농업·제조·금융 등의 협력 강화를 합의했다. 지난해 양국 교역 규모는 전년보다 11.4% 늘어 사상 최대(2120억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말레이시아는 화교 인구 비율이 20%가 넘는다. 캄보디아는 경제 규모는 작지만, 동남아의 대표 친중(親中) 국가다. 지난 5일 중국의 독점 해군 기지로 사용될 우려가 제기된 캄보디아 레암 해군 기지가 개장했고, 중국·캄보디아 합동 군사훈련도 같은 날 진행됐다.

중국 입장에서 아세안은 경제 협력뿐 아니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외교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중요한 파트너다. 시진핑은 지난 8일 주변국과의 외교 문제를 다루는 최고위급 회의인 ‘중앙 주변 공작 회의’를 12년 만에 열고, 동남아 5국(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태국·미얀마) 등 인도차이나반도와 중앙아시아 지역을 ‘운명 공동체’의 두 축이라고 규정했다.

중국은 또 지난 2020년 내수 발전과 대외 무역을 동시에 확대하는 쌍순환 전략을 발표한 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에서 아세안 국가들을 적극 끌어들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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