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기자들과 만나 “반도체 관세를 다음 주 중 발표하겠다”며 “멀지 않은 미래에 시행될 예정”이라고 했다. 이어 “일부 기업에 유연성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확실하진 않다”고 했다. 전날 반도체 관세와 관련, “월요일(14일)에 구체적인 답을 주겠다”고 했다가 시점을 바꾼 것이다.
이 언급은 지난 11일 미 관세국경보호청(CBP)이 스마트폰 등 전자 제품에 대한 상호 관세 면제를 발표한 데 대해 ‘정책 후퇴’ 논란이 일자 이를 다시 번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트럼프는 13일 소셜미디어에 “전자 제품은 면제 대상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고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스마트폰 등에 반도체 품목별 관세를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트럼프의 오락가락하는 관세 정책은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의 관세 조치는 멕시코·캐나다·중국에 국가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지난 2월 1일 이후 10주간 계속 바뀌어 왔다. “자고 나면 골대가 옮겨져 있다(더그 포드 캐나다 온타리오 주지사)” “관세를 가지고 ‘신호등 게임’을 한다(미 민주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 의원)” 같은 비판이 나온다.
한편 트럼프 ‘관세 전쟁’의 최대 표적인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14~18일 올해 첫 해외 순방지로 베트남·말레이시아·캄보디아를 방문하며 우방국 결집에 나섰다. 2018년 미·중 1차 관세 전쟁 이후 중국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에 따라 교역 규모가 급증한 국가들이다. 중국은 동남아를 제조 거점으로 삼아 우회 수출을 늘리는 전략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베트남 간 시진핑 “더 깊은 협력 원해”
미국이 관세를 145%로 올린 중국은 125% 대미(對美) 관세로 ‘맞불’을 놓은 가운데 동남아의 우군을 확보하는 데 힘쓰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14일 베트남 하노이 공항에 도착한 뒤 서면 연설에서 “베트남과 더 높은 수준, 더 넓은 범위에서 더 깊은 협력을 추진하고 싶다”고 밝혔다. 베트남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 가운데 중국과의 교역 규모가 2600억달러(약 370조원·2024년)로 가장 크다. 특히 베트남의 무역에서 중국 의존도는 26%에 달한다.
시진핑은 베트남 방문을 앞두고 “관세 전쟁에는 승자가 없다”고 미국을 겨냥하면서, “중국과 베트남은 홍색(紅色·사회주의) 유전자를 계승하며, 양국은 산업·공급망과 5G·인공지능·친환경 발전 등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글을 베트남 인민보에 실었다. 시진핑은 15∼18일에는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에 머물며 각각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 훈 마네트 캄보디아 총리와 만날 예정이다.
시진핑이 방문하는 3국은 2018년 미·중 1차 관세 전쟁 이후 중국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에 따라 교역 규모가 급증한 국가들이다. 2차 관세 전쟁이 개시된 만큼, 동남아를 대체 시장으로 활용하는 한편, 제조 거점으로 삼아 우회 수출을 늘리는 전략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올해 아세안 순회 회장국에 오른 말레이시아에도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리창 중국 총리는 지난해 6월 중국 총리로서는 9년 만에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무역·투자·농업·제조·금융 등의 협력 강화를 합의했다. 지난해 양국 교역 규모는 전년보다 11.4% 늘어 사상 최대(2120억달러)를 기록했다. 캄보디아는 경제 규모는 작지만, 동남아의 대표 친중(親中) 국가다. 지난 5일 중국의 독점 해군 기지로 사용될 우려가 제기된 캄보디아 레암 해군 기지가 개장했고, 중국·캄보디아 합동 군사훈련도 같은 날 진행됐다.
중국 입장에서 아세안은 경제 협력뿐 아니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등 외교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중요한 파트너다. 시진핑은 지난 8일 주변국과의 외교 문제를 다루는 최고위급 회의인 ‘중앙 주변 공작 회의’를 12년 만에 열고, 동남아 5국(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태국·미얀마) 등 인도차이나반도와 중앙아시아 지역을 ‘운명 공동체’의 두 축이라고 규정했다.
중국은 또 지난 2020년 내수 발전과 대외 무역을 동시에 확대하는 쌍순환 전략을 발표한 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사업에서 아세안 국가들을 적극 끌어들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