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한 박물관이 19세기 살인범 피부를 벗겨 만든 이른바 ‘인피 제본’ 도서를 전시하기로 했다. 박물관 측은 “과거를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창’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전시 이유를 설명했지만, 인간 피부로 제본한 책을 전시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16일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영국 서퍽 세인트 애드먼즈의 모이스 홀 박물관은 최근 사무실에서 발견한 ‘인피 제본’ 도서를 박물관에 전시할 예정이다.
이 도서 표지는 1827년 서퍽 주의 한 마을에서 발생한 ‘붉은 헛간 살인 사건’(Red Barn Murder)의 용의자 윌리엄 코더(24) 시신에서 채취한 피부로 만들어졌다. 코더는 당시 비밀 연애 중이던 마리아 마튼(25)과 야반도주하기로 한 뒤, 붉은 헛간에서 마튼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듬해 공개 처형됐는데, 이후 시신을 해부해 피부로 표지를 제작한 것이다. 책에는 코더의 판결 기록이 담겼다. 코더의 범행 내용이 담긴 도서 표지가 코더의 피부로 제작된 셈이다.
다만 당시 코더는 물증이 아닌, 정황 증거만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마튼의 어머니가 “꿈에서 딸이 붉은 헛간에 묻힌 것을 봤다”고 말했고, 이에 붉은 헛간을 파보니 실제로 마튼이 코더의 녹색 손수건과 함께 발견된 게 결정적인 단서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결국 코더는 용의자로 지목된 뒤 런던에서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선 코더의 무죄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일부 나온다. 유명 역사 도서 ‘호러블 히스토리즈’의 작가 테리 디어리는 “당시 판결은 정황 증거에 기반했으며, 코더는 억울하게 낙인찍힌 인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무죄 여부를 떠나 이 사건은 당대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비밀 연애, 야반도주, 실종, 살해, 시신 은폐, 미신과 꿈 등 극적인 서사 요소가 모두 담긴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코더의 사형이 집행될 당시 처형이 이뤄진 감옥 앞 광장에 7000명 이상의 인파가 몰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에도 사건이 발생한 마을은 관광 명소가 됐고, 연극과 민요, 소설 등으로도 다뤄졌다. 코더의 피부로 책 표지를 만든 것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사무실에서 발견된 인피 제본 도서는 코더의 피부로 만들어진 두 번째 도서다. 첫 번째 도서는 이미 1933년부터 같은 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앞서 전시된 책은 책 표지 전체에 코더의 피부가 사용되고 상태가 온전한 반면, 이번에 발견된 책은 모서리 등 부분적으로만 사용됐으며 곳곳이 해져 있다고 BBC는 보도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우리는 종종 수십 년간 자취를 감춘 물건들을 다시 발견하곤 한다. 이번에 찾은 책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며 “이 도서는 단순히 자극적인 전시물이 아니라 과거를 이해할 수 있는 ‘역사적 창’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아울러 “다른 인피 제본 도서면 몰라도, 이번 경우는 범죄자의 시신이 해부되는 현실에 대해 논의할 기회를 제공한다”며 “불편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역사를 배울 땐 이를 바로 마주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다만 일각에선 인피 제본 도서 전시가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작가 테리 디어리는 “책을 태워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지만, 솔직히 말해 이런 유물들은 너무나 역겹다”며 “물론 사람들은 이걸 보기 위해 몰려들겠지만, 이 끔찍한 유물이 교육의 도구가 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물관 측은 이를 단순히 서커스 같은 구경거리로 소비하려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