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관세 협상의 일본 대표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은 16일 새벽(미국 시간, 한국 시간 16일 밤), 워싱턴 DC로 가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그 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갑자기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일본이 오늘, 관세, 군사 지원 비용, 무역의 공정성에 대해 교섭하기 위해 오고 있다. 나도 함께할 것”이라고 썼다. 협상에 트럼프 본인도 참여한다는 얘기다. 전혀 사전 조율이 없던 것이다. 당황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즉시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과 외무성 간부를 총리관저로 불러, 긴급 회의를 열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미일 관세 협상에 이례적인 미국 대통령의 난입”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대통령에게 ‘난입’이란 거친 표현을 쓸 정도로, 당황한 일본의 모습인 셈이다.
17일 일본 현지 언론들은 “각료급 협상에 외국 정상이 개입한 건 이례적인 대응”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면담을 마친,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을 대표로 하는 일본 협상단은 17일 오전(일본 시각) 미국의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등과 협상 본회의를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례적인 행동이 일본에게 득일지 실일지는 불분명하다. 미국이 미·일 협상에 먼저 조급함을 보인 셈이라면 일본이 유리한 자리를 선점한 것이고,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 문제를 협상 의제로 압박한다면 일본이 일방적으로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긍정론은 닛케이의 분석이다. 닛케이는 “조기에 성과를 얻고자 하는 미 행정부의 조급함을 드러낸 것”이라며 “‘미국 매도’로 상호 관세의 수정을 압박한 시장의 압력이 그 배경에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미국의 상호 관세 조치와 관련해 미국 주식과 채권을 매도했고, 압박에 못이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에 지난 9일 90일간 상호 관세 유예 조치를 취한 것을 일컫는다. 16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제롬 파월 의장의 발언도 트럼프에겐 짐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파월은 이번 관세 인상 폭과 관련 “1930년의 스무트 홀리 관세법으로 부과된 수준을 웃돈다”며 “(정책 불확실성의 증가는) 현대적인 경험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으로선 첫째 협상국이자 동맹국인 일본과의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는 모습을 연출하고 싶은 상황이다. 닛케이는 “미국엔 맨 앞줄에 선 일본과의 협상이 그만큼 중요하다”이라며 “동맹국과의 협상조차 난항을 겪게 되면, 보복 관세를 주고받고 있는 중국에겐 (미국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과 아사히신문은 신중하면서도 ‘일본 불리’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트럼프가 아카자와에게)일본에 대한 불만을 전달하면서 주일 미군의 주둔비용 부담액 증가 등을 압박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미·일 교섭의 이점이 트럼프의 직접 등장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 신문은 “당초 다른 나라에 앞서 교섭을 시작하는 일본이 다른 나라보다 유리할 수 있으리란 견해가 있었다”며 “아카자와는 첫 회담에선 미국 측의 요구를 듣고 이후 대응한다는 전략이었는데, 이런 이점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이 신문은 “일본측 협상담당자들 사이에서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대로 회담이 끝나선 곤란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각료와 협상하는 것보다 대화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고 했다.
지난 2일 트럼프는 무역 적자가 큰 세계 57국 대상으로 하는 상호 관세를 발표했고, 일본산 수입품에 대해 추가로 24%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트럼프는 당초 9일부터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이었지만 이날 부과를 일단 90일간 유예했다. 트럼프는 한국에 대해 25% 상호 관세를 예고했고, 한국 정부도 조만간 이를 낮추기 위한 협상을 미국과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