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을 찾은 아카자와 료세이(오른쪽) 일본 경제재생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아 선물 받은 빨간색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착용해보고 있다. 이 모자에는 트럼프의 서명이 담겼다. 회담 사흘 뒤인 19일 이 사진이 공개되자 일본 내부에선 굴욕 외교라는 등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백악관

미국 백악관이 일본 측 관세 협상 대표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장관)에게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씌운 장면을 미·일 관세 협상 사흘 뒤인 지난 19일 공개했다. 일본과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우방국 협상 대표에게까지 ‘충성‘을 강요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일본에선 특히 ‘굽신 외교‘라는 반응과 함께 아카자와의 이름을 빗대 ‘마가(MAGA)자와가 됐느냐‘는 조롱까지 나오고 있다. 아카자와는 트럼프와의 협상을 설명하며 자신을 낮춰 부르는 ‘가쿠시타(格下)‘라는 표현을 쓴 사실이 알려져 일본에서 ‘저자세’ 논란이 불거졌었다.

미 백악관은 이날 뉴스레터를 통해 지난 16일 일본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이 트럼프 앞에서 MAGA 모자를 쓰고 있는 사진을 배포했다. 당시 예고 없이 미·일 관세 협상에 참석하겠다며 백악관 집무실로 아카자와를 불러 면담한 트럼프는 현장에서 MAGA 모자에 서명한 뒤 아카자와에게 모자를 건넸다. 트럼프가 아카자와에게 MAGA 모자를 선물한 사실은 협상 당일 알려졌지만, 아카자와가 모자를 쓰고 찍은 사진까지 공개되자 일본에선 ‘선을 넘었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일본 대중지 닛칸겐다이는 “트럼프의 구호가 적힌 모자를 쓰고 기뻐하는 모습은 일본 정부가 ‘MAGA 실현‘에 힘쓰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미 언론에서도 “트럼프가 외국 대표에게까지 본인의 ‘캠페인 굿즈(선거 홍보물)‘를 강요하는 것이 정상적 외교냐”는 비판이 나왔다.

일본 내부에서 ‘굴욕 외교’ 논란이 커지자 일본 정부는 서두르지 않고, 선을 지켜가며 협상에 임하는 쪽으로 전열을 가다듬는 분위기다. 쌀·자동차 등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비관세 장벽을 낮추는 등 일부는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도 방위비 분담금으로 대표되는 안보 문제까지 관세를 위해 양보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미국의 요구 사항 가운데 우선순위가 높은 미국산 쌀과 자동차의 일본 판매량 확대를 위해 비관세 장벽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본 언론은 또 “지난 16일 워싱턴 DC에서 열린 미·일 관세 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에게 ‘일본에서 미국 차가 팔리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대일(對日) 무역 적자가 크다. 제로(0)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에 미국산 자동차의 수입과 관련해 까다로운 형식 인증 같은, 일본 시장 진입 규제를 간소화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고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쌀·자동차 등을 미국에 줄 수 있는 협상 ‘카드‘로 제시하면서, 한편으론 미·일 관세 협상에서 안보 문제가 주요 의제로 부각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지난 16일 관세 협상에서 트럼프는 ‘일본의 방위비 부담이 너무 적다‘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19일 NHK에 “안보와 무역을 묶어서 논의하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시바는 앞서 협상을 앞둔 지난 14일 국회에 나가 “서두르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 접근하겠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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