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값 상승의 원인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모멘텀이고, 금 가격을 결정하는 힘은 서방이 아닌 동방이 쥐고 있다는 흥미로운 분석이 나왔다.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종로본점에 골드바가 진열돼 있다. 미국 관세 정책으로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어 안전자산을 찾는 금융소비자들이 금 관련 상품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뉴스1

러시아 국영 매체 RT는 “최근 ‘막대한 부의 이전: 서방은 금 시장의 주도권을 잃었다(A great wealth transfer is underway: How the West lost control of the gold market)’라는 기사를 통해 현재 금 시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른바 금의 흐름을 통한 부의 대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RT는 “금은 지난 수천 년 동안 가치 저장 수단이었고 태환이 가능했다. 하지만 1971년 미국이 일방적으로 달러의 금 태환을 정지(브레턴우즈 협정 폐기)하면서 금의 가치의 변화가 생겼으며, 금은 주기에 따라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자산처럼 거래되었다”며 “금값을 결정하는 주체는 대체로 서양의 기관투자가들이었다”고 전제했다.

금 값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원·달러 환율이 하락세를 보이는 21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 모니터에 금 현물 1g 가격 시세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실제로 1974년부터 금 선물 거래가 시작되면서 금은 실물이 아닌 서류상으로 사고팔게 됐으며, 투기가 얼마든지 가능해졌고, 실물 금은 유한하지만, 금 파생상품의 양은 무제한이어서 시장에는 실물 금보다 서류상의 금이 넘쳐난다. 실물 금이 11조 달러라면 서류상 금은 200조~300조 달러에 달한다는 것이다.

RT는 금 가격은 실물 금의 수요가 아닌 서방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수요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 기관투자가들은 미국의 실질금리가 하락할 때 금을 사들였고, 실질금리가 상승할 때 금을 내다 파는데, 이는 금리가 높을 경우, 금 보유의 기회비용이 상승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금까지 서방 기관투자가들은 증시가 강세장(bull market)일 때 동방에서 금을 사들였고, 약세장(bear market)일 때는 금을 동방에 팔았다. 주도권은 늘 서방이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2022년까지 확고하게 작동하는 법칙과 같았다는 것이다.

금값이 꾸준히 오르면서 금을 팔려는 매도자들의 발길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 등식을 깨버렸다고 했다. 2022년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의 해외 자산을 동결했는데, 우연인지 아닌지 그해 미국의 실질금리와 금 가격의 상관관계가 깨졌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2022년 3월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금값은 하락했지만, 생각보다 회복력이 좋았다. 2022년 9월부터는 미국의 실질금리-금값의 공식이 깨졌으며, 금리는 제자리였는데 금값 상승이 시작됐음을 RT는 지적한다.

2023년에는 미국의 실질금리가 상승했다. 금리가 높으면 서방 기관투자가들은 채권, 주식, 머니마켓펀드(MMF·자산운용사가 펀드를 만들어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초단기금융상품) 등의 자산으로 옮겨가면서 금을 매각한다. 그러면 보통 금값이 하락한다. 하지만 금값은 하락하지 않고 오히려 15%나 상승했다.

RT는 그 시기 금을 판매한 주체는 서방의 기관투자가들이 아니었고, 서방의 금 ETF(상장지수펀드) 재고는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2024년 2월까지 금 ETF에서 유출된 자금은 57억 달러인데, 그중 47억 달러가 북미에서 유출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금 가격은 급격 상승했는데 이는 각국 중앙은행들과 중국 민간 부문에서 실물 금에 대한 수요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로 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일반인들의 금 투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서울의 한 편의점에서 시민이 골드바 자판기를 이용하는 모습. /뉴스1

RT는 금값 상승 요인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금 가격이 단순한 투기 수요보다 실물 금 수요에 의해 결정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금을 집중 매입하고 있으며, 런던과 스위스의 도매시장은 금을 수출하면서 금이 동방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조용히 금을 사들이는 것은 일종의 ‘탈(脫) 달러화’ 현상이다. 달러의 무기화로 세계 각국이 달러 보유의 위험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봤다. 또 미국의 부채 위기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지금과 같은 이자 비용을 계속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금리를 인하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셋째, 우크라이나 전쟁 후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브릭스(BRICs ) 국가들이 자국 화폐로 교역을 점점 많이 한다는 것이다. 자국 화폐로 하는 교역이 늘어나면 무역수지의 불균형을 조정하기 위해 중립적인 지불 준비 자산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결국 “금이 서방에서 동방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실제로 부가 이전된다는 의미”라고 RT는 분석했다. 또 “한편으로는 서방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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