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 제롬 H 파월 연방준비제도(FRB) 의장에 대한 공격 기조를 갑자기 바꿨다.

미국의 기준 금리를 결정하는 FRB의 제롬 파월 의장은 지난 주 트럼프의 관세 전쟁에 대해 “인플레이션 상승”에 대한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금리 인하’를 원하는 트럼프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트럼프는 파월을 “큰 실패자(a major loser)”라며 해임 의사를 강력하게 밝혔다. 그는 21일에도 자신의 소셜미디어 플랫폼인 트루스 소셜에 “파월은 당장이라도 해임돼야 한다(Termination cannot come fast enough)”라고 썼다.

그러나 이 소셜미디어 게재 이후 미국 국채와 주식, 달러 가치가 모두 하락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또다시 벌어졌다.

결국 22일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나는 그[파월]가 금리 인하 측면에서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금리를 낮추기에 완벽한 시기”라고 말하면서도 “그가 하지 않아도 세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나는 그를 해임할 의도가 없다. 언론이 멋대로 얘기를 부풀린다”고 말을 바꿨다. 이후 미국 주식시장은 23일까지 급등세를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중국에 대해 145%의 추가 관세 부과를 비롯해 전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에 나섰지만, 22일 백악관에서 ‘파월 해고’ 의사를 번복하면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도 “제로(0)는 아니겠지만, 상당히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는 괜찮다. 중국은 결국 협상을 해야 하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스콧 베트 미 재무장관은 “(무역전쟁의) 긴장이 완화될 것이라며, 현 상황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가 현재 145%로 책정된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50~65% 낮추는 것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23일 백악관 북쪽 잔디밭에 서 있다. 그의 경제ㆍ무역 정책과 관련한 발언은 주식시장의 급격한 변동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AP 연합뉴스

월스트리트저널은 23일 “트럼프의 최대 적(敵)은 주식시장이며, 트럼프는 취임 3개월 동안 연방정부 기관들을 무너뜨리고 행정부 권력을 강화하고 미국의 글로벌 동맹에 도전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많은 시위와 법적 도전, 지지율 하락, 정치적 반대에 직면했지만, 지금까지 그를 물러서게 한 유일한 힘은 월스트리트였다”고 진단했다.

트럼프가 제롬 파월 미 FRB 의장에 대한 비난 수위와 대(對)중국 무역 전쟁의 공격 기조를 누그러뜨리는 데에는 베선트 재무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 행정부 핵심 장관들의 막후 조언, 미 최대 소매업체 CEO들의 가격 인상에 대한 강력한 경고가 작용했다.

◇미 최대 소매업체들의 경고

트럼프는 21일 타겟ㆍ홈디포ㆍ월마트 등 미 최대 소매업체들의 최고경영자들과 만났다. 이날 회동에서 이들은 트럼프에게 관세가 공급망을 뒤흔들고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은 시장과 언론 보도를 면밀히 주시하며, 지난 수주 동안 TV 뉴스 화면과 신문 1면을 장식한 극심한 시장 등락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취임 후 S&P 500 지수 11% 하락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S&P 500 지수는 약 11% 하락했다. 이는 이 지수가 시작한 1928년 이래 역대 대통령이 임기 첫 94일 동안 거둔 최악의 ‘실적’이라고 한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S&P 500 지수는 67% 상승했고, 그는 이를 늘 자랑스럽게 말했다(트럼프 주장은 88%). 이는 바이든 재임 중의 56% 상승보다 높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 주식시장 주요 지수의 변화

트럼프는 지난 2일 약 90개국에 대해 최대 49%에 달하는 상호 관세 부과를 발표하고, 이를 ‘해방의 날(Liberation Day)’라고 명명했다. 이후 최악의 시장 매도세가 계속 이어졌던 지난 6일에도 “이는 미국 경제 재편을 위한 ‘대가’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어떤 것이든 하락하는 걸 원치 않지만, 뭔가를 고치려면 때때로 약을 먹어야 할 때가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지난 수 주간 미국이 제조업 중심으로 번영하는 ‘황금 시대’를 맞으려면, 단기적인 고통은 견뎌야 한다고 얘기해왔다. 그러나 미 국채의 급격한 매도세가 이어지자, 9일 대부분의 관세를 90일 유예했다.

트럼프의 정치 고문이었던 데이비드 어번은 “트럼프는 시장을, 모든 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여주는 척도로 본다”며 “그는 시장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미국 노동자가 희생되는 것[미국 제조업의 붕괴]을 싫어한다. 지금 벌어지는 갈등은 이 두 정신세계 간의 충돌”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애초 파월 해임의 꼬투리 잡기에 나섰으나

워싱턴포스트는 백악관 법률팀이 최근 수일간 파월 FRB 의장을 해임할 ‘정당한 사유’를 찾아 여러 법적 옵션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FRB 설립에 관한 법률은 FRB 의장이나 이사가 해임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로 직무 태만, 무능력이나 부정 행위와 같은 ‘정당한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과의 통화 정책 충돌은 아니다.

그러나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트럼프에게 파월 해임은 시장에 광범위한 혼란을 초래하고, 복잡한 법적 다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FRB와 전면전을 벌여 금융시장에 추가 혼란을 초래할 필요도 없고, 이미 새로운 관세를 비롯해 여러 경제 전선(戰線)에서 싸우고 있음을 상기시켰다는 것이다.

또 러트닉은 파월을 해임해도, FRB의 다른 이사들도 파월과 유사한 통화정책 노선을 따를 가능성이 높아 실질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지난 달 FRB 부의장으로 승진시킨 미셸 보우먼도 금리의 급속한 인하를 가장 반대하는 이들 중 한 명이다.

또 미국 FRB의 독립성은 월스트리트의 채권 투자자들 사이에서 ‘신성불가침’과 같이 인식된다. 트럼프가 고율의 관세로 인해 인플레이션 압박이 심한 상태에서 FRB에 금리 인하 조치를 압박해 높은 인플레이션을 용인한다고 인식되면, 외국 투자자들은 미 국채를 기피하고 결과적으로 금리는 급등하게 된다.

트럼프의 경제 고문으로 활동했던 스티븐 무어는 “트럼프가 결국 현명한 선택을 했다. 파월을 해임했으면 시장은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했을 것이며, 지난 한 달 간 겪은 시장 혼란을 고려할 때 지금은 불확실성을 추가할 시점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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